구라구라왕국 체험기 #6-3

  

내용을 알고 읽으시면 경악 그 자체 입니다.

 

아래의 글은 대전 예안교회 강성호 전도사님의 사이비종교 15년 경험담 입니다

모두 예안교회 카페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고소질 잘하는 그곳의 특성상 넌픽션 형태로 경험담을 쓰셨습니다.


내용을 알고 제대로 이해하며 읽으시면

아주 아주 아주 못된 사교의 모든 것을 아실 수 있으며

모두 예안교회 카페(http://cafe.naver.com/scjsangdam)에 올려져 있는 글 입니다.

 

 

구라구라 왕국 체험기 3

 

▶ 공개 망신의 대원리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을 한다고 하지만, 연약한 육신이 어찌 공개적인 망신과 수치로부터 완전히 자유 할 수 있겠는가? 영악하고 잔인한 거들먹 관찰사는 이 이치를 이용하여 거들먹 지역을 치리해 나갔다. 본인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관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 백이 되었든 수 천이 되었든 많은 무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관리들은 그렇게 무참히 짓밟히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다. 만약 밟힐 만한 일이 생기면 무리 앞에 나아가기 전에 가슴 조리며 전전긍긍 했다가, 밟히는 장소에 나가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수치심에 정신이 아뜩해질 정도다.

 

   나와 남편은 자주 겪어보았기 때문에 잘 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큰 광장 한 가운데서 발거 벗겨 매달리는 기분이다. 이와는 반대로 관찰사는 관리가 자기 마음에 맞게 행동하면 대중 앞에서 그들을 한없이 띄워주고 영광 가운에 세워준다. 수치를 맛본 자든, 아니면 영광을 맛본 자든 누구든지 그렇게 관찰사의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멀리 있는 백성들은 관찰사를 숭배하지만, 관찰사 바로 아래서 일하는 관리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를 공포의 대상이요 원흉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관찰사도 그런 그들의 속내를 알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속내들이 서로 뭉쳐 반대되는 큰 세력을 형성하지 않도록 관리들이 서로 가깝게 지내면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금지시킨다. 물론 공식적으로 금하라는 명은 없었지만, 서로 왕래하고 대화를 나누는 관리들을 이내 관찰사에게 찍혀 수치 가운에 짓밟히는 일을 겪게 되므로, 관리들은 알아서 삼가고 경계하는 것이다.

 

▶ 볼모의 대원리

 

   거들먹 관찰사는 거들먹 지역에 세워진 각 고을에 수령을 파견한다. 그런데 거들먹 관찰사는 각 고을에 수령을 파견해 놓고 그 부인들은 절대 남편을 따라 이동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 부인들은 관찰사가 있는 지역에 살면서 관찰사가 상주하는 성읍에 출석해야 했다. 이것은 구라구라 왕이 명한 구라구라 전체의 분위기는 아니다. 다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역을 부흥시켰던 거들먹 관찰사의 방법이었다.

 

   나 역시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은 광야 고을로 발령받아 떠나고 나는 거들먹 지파장이 있는 곳에 남았다. 남편은 한 달에 한번 있는 고을 수령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거들먹 관찰사의 성읍에 왔지만, 회의가 끝나면 바쁜 일정에 쫓겨 곧바로 광야고을로 가야 했다. 주말이나 방학에 내가 언제든지 광야고을로 남편을 만나러 갈 수 있었겠지만 그것 역시 불가했다. 언젠가는 살며시 보러 갔다가 누군가의 입을 통해 관찰사에게 전해져 모진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남편이 일하는 하나님의 일터에 여자가 들락거리면서 더럽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한 부부가 서로 떨어져 살면서 관찰사의 눈치만 살피며 지냈다.

 

   당시 신혼이었던 내가 이에 불만을 토로하기가 민망했던 것은 결혼 직후부터 10년이 넘게 떨어져 지내는 나올인 부인를 비롯해 몇 년을 그렇게 떨어져 지내는 수령의 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편이 보고 싶거나 궁금할 때는 광야고을에 살며시 가서 마음 졸이며 살짝 만나고 왔다. 무슨 대단히 유명한 연예인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니면서 누구의 눈에라도 뛸까봐 전전긍긍하면서. 거들먹 관찰사는 부부를 함께 그 지역으로 보내면 그들이 그 곳에서 나름의 알진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착하는 것을 염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수령의 목을 조이고 견제하고자 자신의 시선 밑에 그 가족들을 잡아 놓고 싶었던 것 같다. 관찰사의 졸렬하고 빈곤한 인격이 결과였고 다른 이들은 신앙이 이름으로 그것에 희생이 되어야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이 너무도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로 보편화된 요즘,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겪으면서까지 왜 구라구라 왕국 안에 머물러 있었는가? 나는 성경말씀을 하나님이 주신 특별계시로 믿었으며, 그 성경이 풀어가다 보니 구라구라왕국을 증거하고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에 구라구라 백성이 되었다. 그래서 성경 말씀으로 구라구라 왕국이 불법이라는 것을 증거 받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구라구라 신앙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란 본디 죄성으로 가득한 죄인이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이 나의 신앙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라구라 왕국의 내부가 더 아수라장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일종의 명현반응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 매일 엎드려 구라구라를 믿는 믿음이 더욱 순전하고 완전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왜 나는 자꾸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되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게 되면서 어려움만 생기는 것인지 절망스러웠다. 너무 억울하고 고통스런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엎드려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데, 왜 나는 더 거친 광야로 내팽겨쳐지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우리가 겪는 것들 중의 한 가지도 겪지 않은 구라구라 백성들이 대부분인데, 왜 우리는 여기저기에 연루되면서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는 것일까? 어느 날, 나는 역시 광야고을에 있던 남편과 따로 거들먹 성읍에 예배를 드리러 나갔다. 그 날은 거들먹 관찰사는 날을 잡고 작정한 것 같았다. 예배 시간에 설교는 안 하고 수 천의 백성들 앞에서 나와 남편을 난도질 하였다. 수 천의 신도들의 숨소리도 끊어진듯한 적막 속에서 분을 이기지 못한 거들먹 관찰사의 막말만 쩌렁쩌렁 울리고, 백성들은 그 속에 앉아 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관찰사의 말에 주목했다.

 

   나는 관찰사의 막말과 백성들의 따가운 시선에 온 몸이 찢기는 것 같았고 정신은 혼미해졌다. 눈물이 쏟아지려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울면 안 될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뛰쳐나가버리고도 싶었지만, 설교를 기록하기 위해 펴 놓은 노트위에 ‘괜찮아, 괜찮아’를 글적거리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관찰사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관찰사와 우리만 아는 것이다. 백성들은 관찰사가 토시 하나라도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테니까. 그 일을 겪은 시어머니는 그날로 바로 구라구라 왕국을 떠났다. 말씀을 선포하는 단에서 저렇게 엄청난 거짓말들을 막 쏟아낸다는 것은 다른 것은 따져 볼 필요도 없이 거짓이며 사기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그때 시어머니의 판단과 결단이 현명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시어머니가 연세가 많으셔서 구라구라 교리를 제대로 못 깨달은 탓에 인간적인 부분에 걸려 실족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아파서 오히려 통증도 느껴지지 않은 멍멍한 상태까지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곳을 떠날 생각은 못했다. 이런저런 일로 찢기고 뜯기기를 계속하다 그 일을 겪은 뒤로는 한참을 예배 보는 자리에 나갈 수가 없었다. 관찰사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다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배 시간이 되면 교회가 보이는 곳에 주차를 해 놓고 차 안에서 울면서 기도하고 돌아오기를 수차례 계속하였다. 세상 인연은 다 끊어졌는데 그렇다고 구라구라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들을 크게 실족시킬 것이니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남편에게도 다 말할 수 없었다. 힘들게 버티면서 일하고 있는 남편의 힘을 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아프고 외로웠다. 그러나 왠지 울면서 매달리는 주님마저도 계속 침묵하시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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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afe.naver.com/scjsangdam/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