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구라왕국 체험기 #6-6 (최종)

내용을 알고 읽으시면 경악 그 자체 입니다.

 

아래의 글은 대전 예안교회 강성호 전도사님의 사이비종교 15년 경험담 입니다

모두 예안교회 카페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고소질 잘하는 그곳의 특성상 넌픽션 형태로 경험담을 쓰셨습니다.


내용을 알고 제대로 이해하며 읽으시면

아주 아주 아주 못된 사교의 모든 것을 아실 수 있으며

모두 예안교회 카페(http://cafe.naver.com/scjsangdam)에 올려져 있는 글 입니다.

 

 

 

구라구라 왕국 체험기 6

 

   구라구라 왕국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 발발했다. 구라구라 왕을 가까이서 보좌하던 신 판서가 다른 몇 명과 함께 구라구라 교리의 모순과 의문을 제기하면서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구라구라 왕국은 비상사태에 들어갔고, 백성들이 모일 때마다 이에 대한 경계 교육이 이루어졌다. 선에서 악으로 돌이킨 자,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자 즉 범죄한 천사(계명성)와 같은 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미혹되는 것은 뱀의 미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는 것과 같다고 했다. 구라구라 왕국을 이탈할 즈음에 그들의 언행이 얼마나 악한 것들이었는가에 대하여 계속 폭로되었다. 구라구라 백성들은 계속해서 그러한 내용들을 접하면서 경악과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을 듣고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신비한 직감 같은 것을 신뢰하지 않는 나로서는 지금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참 신기한 일이다. 반역하고 이탈한 자들의 악행이 연일 폭로되어지고, 이에 대해 경악과 비난으로 들끓는 무리들 속에서 나는 심장이 뛰면서 흥분과 설렘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조정에서 구라구라 왕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전달되어지는 내용들을 백성들은 한 치의 의심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는 공식적으로 백성들에게 전달되어지는 내용들이 실은 사실과는 다른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익히 체험하며 살아왔기에 이번 일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실제 사실은 공식적인 전달 내용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조소가 쏟아지는 반역자들의 주장이 나에게는 나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일단 그 반역자들을 만나 사실을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반역자들과의 연락이나 만남은 절대 불가하다는 경계 명령이 떨어졌다. 특히 관리들에게는 최근 일정기간의 핸드폰 통화내역을 제출하라는 명령이 수시로 내려왔다. 반역자들과의 통화기록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연락을 시도한 자는 출회를 시키겠다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내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그 반역자들과 차분히 통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인솔하여 파주에 있는 영어마을에 입소하게 되었다. 그 때 인솔 교사 앞으로 개인 방이 주어졌는데 그 곳에 유선 전화기가 있었다. 그 전화기를 사용하면 구라구라 왕국에게나 또 반역자들에게나 내 신분이 노출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반역자들 중의 주동자였던 신 판서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리고 그 분을 만났다.

 

   신 판서는 자신이 의문을 가지고 반론을 제기한 교리부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함정에 빠져 누명을 쓰고 쫓겨 나오게 된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주와 관련된 구라구라 실체의 여러 가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교주의 돈 문제뿐만 아니라 여자 문제도 있었다. 구라구라의 험한 시간들을 견디면서 ‘어쩌면 그럴지도’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역시 그랬구나’라고 확인했다. 그리고 그 분이 구라구라 교리의 생성과정을 추적해볼 수 있는 검색 자료들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져서 소개받은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8 ~ 23년 전인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반증(상담소나 인터넷)에 대한 경계 교육이 구라구라 안에서 왕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상담소나 인터넷을 통해 구라구라 교리 반증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알지 못했었다.

 

   그래서 구라구라의 부조리에 마음이 찢기고, 구라구라 교리의 불일치에 머리가 아프면서도 일체의 탈출구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터넷이나 상담소에 반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호기심을 가지고 벌써 살펴 보았을런지도 모른다. 일상을 폐하고 잠도 안자면서 2박 3일 동안 인터넷 자료와 기타 자료들을 탐색하면서 이단 교리의 변천사와 다른 이단 교리들을 세밀하게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구라구라 교리가 이단 교리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 수정?보완?추가?삭제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라구라는 최초의 특별한 무엇이 결코 아니었다.

 

   다만 이단 역사의 흐름 위에 있는 한 지점에 불과했다. 온 몸의 힘이 풀리고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구라구라 경계선 안에 있던 발을 구라구라 경계선 밖으로 그렇게 한 걸음 옮기자, 그 안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안에서 의문이었던 괴로운 것들의 실체가 깨달아졌다. 그 한 걸음 움직이는데 15년이 걸렸으니, 너무 멀고 긴 한 걸음이었다.

 

   내 마음의 변화를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신 판서를 만난 것과 그에게서 들은 내용 그리고 살펴본 자료들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남편은 자신도 살펴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도 나처럼 며칠을 잠도 잊은 채 여기저기를 뒤지고 살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속은 것 같다고…. 우리는 폐허가 된 서로의 마음을 의지하며 차후 입장 정리에 대해 의논했다. 남편은 며칠 후 서당 개강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관직부터 내려놓겠다고 했다. 나는 얼렁뚱 영의정을 만났다.

 

  계6:6에 심판받지 않는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가 나온다.   구라구라에서는 이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가 초림 때는 예수님과 3명의 제자요, 재림 때는 구라구라 왕과 얼렁뚱 형제, 그리고 거들먹 관찰사라고 했다. 거들먹 관찰사와 얼렁뚱 형제는 구라구라 건국 멤버로 구라구라 안에서 그 영향력이 대단했었다. 더구나 그들은 성경 예언에 기록된 실상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얼렁뚱 영의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동안 남편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면 그들의 심령이 실족할 까봐 조심스러워서 혼자만 알고 끙끙거리던 모든 일들, 내가 겪어내야만 했던 구라구라의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에 붙잡혀 구라구라에 남아있었는데, 이제 그 교리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구라구라를 떠나겠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그 얼렁뚱 영의정은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이에 대하여 애써 해명하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구라구라 신앙을 다시 권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구라구라의 은밀하고 잡다한 사연들을 너무 많이 겪고 알고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얼렁뚱 영의정은 구라구라의 제일 윗자리에서 누구와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처지라 버겁고 외로웠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잠깐 이성을 잃었었던 것일까?

 

   얼렁뚱 영의정은 자신의 이야기만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구라구라 왕과 그 부인 그리고 그 아들에 관한 부정들, 그리고 그것에 연루되어 자신의 고단하고 억울했던 사연들을 길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에게 ‘사모님, 내가 누굽니까? 실상의 인물 아닙니까? 그래서 구라구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실상을 교육하던 사람입니다. 사모님이 이야기하려는 실상이 제 멋대로 바뀐 것,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 강 수령(내 남편)이 지금 구라구라를 나가면 그 나이에 무슨 일을 해 먹고 살 것이며 무슨 비젼이 있겠습니까. 그냥 구라구라에 남아 있으십시오. 그러면 좋은 날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런 마음으로 남아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구라구라 고위 관리들과는 달리 얼렁뚱 영의정은 시종일관 비교적 그 태도가 예의바르고 점잖았으며, 또 단호하게 돌아서는 나를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와 신발장 앞까지 배웅했다. 후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더라도 웃으며 인사는 하자는 말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그 당시 구라구라에서 왕 다음으로 백성들의 믿음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미 구라구라의 실체를 알고 결단한 뒤였지만, 그래도 그의 말은 큰 쇠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치는 것 같은 충격이 되었다. 어이가 없었다.

 

   하나뫼 지역으로 발령 받은 후에 가장 가깝게 교제하던 한 가정이 있었다. 그 가정도 남편이 훈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어 우리와 입장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해서 쾌 가깝게 지냈었다. 그래서 우리는 구라구라가 사기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곧 바로 그 가정을 방문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정리하고 요약한 구라구라 교리 반증에 관한 글을 그들에게 내밀고 읽어보도록 권했다.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읽어보고 함께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 훈장은 그것을 다 읽은 후에, 이 글은 절대 외부에서 유입된 글이 아니라 구라구라 교리를 너무 잘 아는 내부인이 쓴 글 같다고 했다.

 

   그리고 엄격한 얼굴과 목소리로 우리가 영적으로 많이 혼탁해진 것 같다고 하면서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바로 조정에 우리 부부가 구라구라를 대적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 같다는 보고를 했다. 물론 그 훈장이 그 보고를 하기 까지 나름 대의와 인정 사이에서 갈등을 했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나는 대화를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찾아갔다. 그런데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내가 그 집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계속 문을 두드리자 ‘경찰을 부르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동안 그 부부와 우리 가정이 함께 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 동안 함께 나누었던 마음과 사연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구라구라에 반한 입장이 된 것 같으니 하루아침에 냉한 모습이 되어 버린 그들. 그들이 붙들고 있는 신앙의 본질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씁쓸하고 아팠다.

 

  거들먹 지역에서 내가 멘토로 삼았던 나우직 사모가 생각났다. 외부에서 들어온 자료를 구라구라 백성이 남편에게 들고 왔는데 남편도 어려워하는 것 같다며, 그 집 부부가 한 번 읽어보고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을 했다. 그리 아둔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우리가 전해 주는 글을 한 번 만 읽어보면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우직 사모는 남편이 들어오면 이야기 하고 살펴보겠노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반나절 만에 연락이 왔다. 나우직 사모의 남편이 출처가 불분명한 글을 함부로 읽으면 영적으로 위험하다면서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래저래 둘러대면서 거듭 권했지만 내가 서툴러서였는지 그들의 완고함을 꺾을 수가 없었다.

 

   며칠 후에 하나뫼 성읍 관리들이 우리 집으로 들이닥쳤다. 약 5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집을 가득 메웠다. 촬영을 위한 준비도 해가지고 와서 찍어댔다. 나와 남편은 그들과 마주 앉았고 그들을 대표하는 몇 사람과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그간 구라구라 안에서 겪었던 온갖 부정과 부패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남편은 교리의 모순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당당하게 떼로 몰려왔던 그들이 청년들로부터 시작하여 한 두 명씩 그 자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그랬을 것이다. 그들 중 리더가 되는 몇 몇이 당당하게 데리고 왔던 이들을 황급히 빼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보다 조금 뒤에 구라구라를 빠져나온 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달랐다. 우리가 그들과의 토론에서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며, 게다가 우리들이 계시 받았다는 헛소리까지 했다는 말이 구라구라 백성들에게 전해졌다고 했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구라구라를 나오자 온갖 비방들이 우리 등을 향해 날아와 꽃혔다. 남편의 불륜 상대였다는 여자들이 등장하고, 더 높은 자리를 탐했다가 앙심을 품었다는 말도 나오고 성읍의 돈을 횡령했다는 죄목도 있었다. 구라구라의 실체를 다 알아버린 우리들과 구라구라 백성들 중 누구와도 연락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하겠기에 우리를 인격 파탄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구라구라의 당연한 입장이었겠지만, 우리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형용이 어려운 어이없는 것들이었다.

 

출처: http://cafe.naver.com/scjsangdam/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