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증 문 서울 야고보 전 ♡ 지
안녕하세요, 저는 신천지 예수교 서울야고보지파 서울교회에서 4년 반 정도 헌신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올해 5월 22일에 건져진 전♡지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천지가 지상천국이요 유일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확신했던 제가, 이렇게 마음을 돌이켜 그곳에서 악명 높았던 구리초대교회에서 간증을 다 하다니, 정말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와 저희 가족은 5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 무신앙이었습니다. 큰집 식구들이 모두 독실하셔서 저희 집안을 계속 전도하시려고 하셨고 명절 때마다 큰아버지 주도 아래 예배를 드리곤 했지만, 각자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외고입시다 대학입시다 하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점수와 대학으로 보는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만 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해야 부모님이 기뻐하시고 또 나중에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제 꿈의 발판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그 때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참 힘들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에는 제 나름의 질풍노도의 시기와 학업에 대한 압박이 겹쳐 정말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업도 학업이지만, 하나님을 모른 채 아무 소망 없이 중심 없이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원하는 대학에 붙어서 잠시 동안 참 기뻤지만, 그 후에는 굉장한 공허감이 밀려왔습니다. 눈 딱 감고 전력질주로 드디어!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눈을 떠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고 내가 왜 전력질주를 한 걸까, 정말 열심히 달렸는데, 왜 달린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개 숙이고 책만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서 제 주위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에 대해,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한 겁니다. 나는 왜 태어나서, 왜 살아가고, 이 세상과 많은 인생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답을 수없이 들어왔어도 저로서는 모두 뭔가 부족했고, 제 나름의 생각을 거듭한 결과는 “인생무상”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니까 결국 인생의 의미는 없고, 이 썩은 세상을 정화할 수 있는 답도 없고, 또 신이 있는데 인생과 세상이 이럴 리 없으니 신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그렇게 무신론자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뒹굴방굴하며 누워있는데 불현 듯 ‘큰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나보고 교회 다니라고 하시는데, 교회가 뭐가 그렇게 좋길래 그렇게 가보라고 하시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딱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신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일단 궁금하니까 한 번 가보기는 하자, 하는 생각에 기독교였던 친구들에게 아직도 교회 나가냐는 문자를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귀신같게도 그 중 1명만이 지금도 교회 다니고 있으니 같이 가자는 답장을 해줬는데, 이 친구가 향후 저의 인도자가 됩니다. 신천지로 인도해주는 인도자. 더 놀라운 건 사실 다른 1명도 똑같은 답장을 해줬는데, 제가 잘못 읽고 넘겨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신천지로 보내시려고 작정을 하시고 눈을 가려주신 것이죠.
그렇게 저는 위장교회로 인도가 되어 잎사귀를 만나 그간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했던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놓았고, 그 중 하나를 그분이 신천지 식으로 풀어주니 처음으로 뭔가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앞으로 자기가 이런 신앙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데 괜찮겠냐는 그 분의 제안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덥석 잡고 말씀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신앙도 하나님도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한 건데, 그 때 당시 저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주의였습니다. 머리만 커가지고 제 머리를 믿었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정말 감사한 게, 신천지에 가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믿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 같아요. 사람의 머리로 흠이 없다고 생각했던 신천지 교리도 결국은 오류 투성이였다는 것을 깨닫고, 내 머리도 믿을 게 못 되며,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의 논리와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신천지에 다녀와서야 느끼게 되었거든요.
신천지에 입교해서는, 그 때 제 입장으로는 처음 만난 하나님과 처음 해보는 신앙이라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답을 찾아 헤매던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고 답을 알려주셔서 나를 살게 하셨다는 생각에 어느 날은 가슴 무너지도록 감사해서 화장실 물을 틀어놓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107:19-20의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는 말씀이 정말 저에게 응한 것 같았습니다. 신천지 나와서 이 성구가 더 와닿고 감동이 되는데요, 그래도 그때는 인생무상이었던 제게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목적과 소망과 답을 제시해주니, 저는 물 만난 고기마냥 매일을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기들 중에 제일 먼저 구역장이라는 사명을 맡고, 새신자팀장, 새신자부장 등을 하며 정말 열심히 하였습니다. 항상 무기력하던 저에게 그런 열정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신천지 청년들과 함께 새벽부터 새벽까지 함께 부대끼며 동고동락하다 보니, 정말 그때 당시로는 가족 이상으로 서로 소중하고 사랑하는 지체들이었습니다. 우린 정말, 영원히, 영원히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지내자, 라는 말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영생할거니까 정말 현실이 될 거라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열심히 안하는 사람도 있지만, 열심히 하는 청년들은 정말 먹을 것 못 먹고, 잘 것 못 자면서 헌신합니다.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저도 복음방을 2-3개씩 하느라 일과를 마치고 회의까지 끝내면 밤12시가 넘는데, 그 때부터 또 다음날 복음방 준비하느라 새벽4시까지 24시간 까페에서 교안준비하고 잠시 엎드려 잤다가 첫차타고 학교가고, 학교가서 계속 졸다가 학교끝나면 또 교회로 달려가고, 상담하러 가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진짜 몸이 축나는 것을 느끼고 정말 몸이 썩는 것 같다 싶게 힘들더라도 오히려 정신만은 말짱하고 너무나 보람차고 행복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가치있는 일인 영혼구원을 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우리 신천지인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어요. 저는 가끔 제가 이 정도였는데 목사님 전도사님은 어떠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마약이라는 표현이 회심되기 전에는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지금은 정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몸은 피폐해지더라도 정신은 황홀하게 하는 강한 마약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행복하긴 했어도 스트레스는 정말 엄청났던 것 같습니다. 사명이 올라갈수록 늘어나는 업무에, 기한을 어기면 안 되는 하늘군대였기 때문에 항상 쫓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제 동료 사명자들의 소원이 하루만 잠수타보고 싶다,였습니다. 부장이 되고는 업무가 갑자기 너무 많아져서 하루는 그러면 안 되는데 신천지 노트를 가방에 몰래 넣어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 아 안되는데...하다가 잠들어 버렸어요.
그날 밤이 하나님이 정하신 D-day였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게 걸릴 줄이야. 가방을 생전 안 뒤지시던 어머니를 믿고 자료를 가져왔던 건데, 그날 밤에 어머니가 꿈을 꾸신 겁니다. 꿈 속에서 깊고 어두운 물가를 제가 위태위태하게 걷고 있었고, 그 물이 저를 삼킬 것 같은 불안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 꿈을 꾸시고는 너무 불안해서 새벽에 저를 확인하려고 들어오셨는데 제가 마침 그때 화장실에 갔고, 제가 방을 비우니 가방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에 뒤져봤더니 신천지 공책이 딱..! 있었던 겁니다. 아, 그 때는 정말 평생 못 잊을 것 같은데, 어머니가 안방에 앉아서 제 공책을 펄럭펄럭 펼쳐보시며 “예지야, 너 신천지 다니는구나?” 하시는데... 와.... 심장이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고 그 공책 맨 앞에 새신자부장 전예지, 하고 조직도가 붙어있었기 때문에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신천지 맞다, 했고, 그 때부터 말로만 듣던 핍박이 시작되었죠.
처음에는 임용고시 합격하면 신천지 말씀을 들어보겠다는 부모님을 전도하기 위해 임용고시 공부를 2달 정도 했습니다. 신천지인에게 가족전도는 최고로 간절한 소망이잖아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신천지 생각만 더 나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내가 이러고 있나, 엄청난 고뇌 끝에 내가 더 열심히 하면 우리 가족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거라 믿고 신천지 강사가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게 됐습니다.
심각성을 아신 부모님께서 큰집과 구리초대교회에 도움을 요청하셨고, 권사님인데 큰엄마 뻘이신 분이다,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는 말씀에 큰엄마 뻘이시면 뭐...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잡은 날짜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반증교육도 받긴 했지만, 살기 위해서는 신천지 교리 몇 자라도 더 봐야했을 그 기간에, 저는 거의 처음으로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느라 심지어 복음방까지 취소하는 등 이상하게도 교리공부를 하기가 싫은 겁니다. 그리고 제가 교관이다 보니 신천지 쪽에서도 저를 믿고 제가 알아서 하려니, 하고 관리를 거의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집에서 강간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큰엄마 뻘이신데 뭐,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성경을 잘 아시더라고요. 그리고 돈 벌려고 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간절해 보이고 진심이 느껴져서 충격을 좀 받았습니다. 몸이 아프신데도 무리해서 하루종일 연거푸 강의를 하시는거에요. 그리고 신천지에서 보여준 사진은 완전히 메두사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강아지 같이 온화하게 생기신 거에요. 여러모로 당황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9일간 제 모든 지식과 억지를 펼쳤고, 중간 중간 신천지 교리가 좀 이상한데..?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제가 우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닌 척 하며 나는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버텼습니다.
중간에는 신천지가 아닌 척 위장하고 저희 집에 드나들었던 인도자가 전해준 신천지의 명령에 따라 경찰서로 갔다가 가출도 한 번 했는데, 정말 하고 싶지 않았고 마음이 탔지만 순종이라는 명분이 그때는 왜 그렇게 컸던지요. 그.런.데. 그 다음날 지파장과 중진들이 직접 피드백을 해주는데, 부모님이 신천지 와서 시위할 경우 너는 엄마 학교에 찾아가서 맞시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경찰서 가는건 꾸역꾸역 했어도 진짜 맞시위라니...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고, 인도자가 부모님을 속인 문자를 보고 웃는 지파장과 청년회장을 보고 사단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때는 내가 왜 이러지, 독이 알게 모르게 내 안에 퍼졌나보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독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이 제 안에 들어와 영향을 줬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틀려도 가겠다는 저의 발언에 팬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 가서 계속 버텨봤는데, 아무리 버텨 봐도 아버지가 굽힐 생각이 저만큼이나 없으신 것 같은 거에요. 신천지 안 간다고 할 때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고. 그래서 설마 그러겠어, 하고 한 달쯤 버텨봤는데 오빠가 한달치 식량을 또 사오는 거에요. 그때의 절망감이란...
가면을 쓰지 않으면 진짜 여기서 평생 썩을수도 있겠단 두려움에 가면을 썼고, 가면을 쓸 때마다 여기 앉아있는 우리 호♡이, 소♡이, 지♡이, 영♡ 등등의 사랑하는 우리 초대교회 식구들이 그때 그때 적발해주는 바람에 계속 들키고... 지금도 생각나는게, 제가 한창 가면을 쓰고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시면서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초대교회에 너를 아는 사람이 많아. 잘-생각해 봐.”라고 하시는데...와... 정말 티는 안 냈지만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식은땀이 막... 애써 태연한 척 “그렇겠죠.”라고는 했지만 아버지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을 그 의문의 사람들이 너무 두렵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여담이지만 바로 그 원망스러웠던 배도자들과 어제는 등산도 가고 저녁도 먹고 했는데, 아직도 가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고 사람인생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구나 싶습니다.
어쨌든 그러다가, 어찌어찌 가면을 쓰는 데 성공해서 드디어 내일 집에 간다, 했는데. 갑자기 그 다음날 아버지가 텔레그램 비밀번호를 불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고 하시는거에요. 텔레그램 안에는 신천지 정보들과 열매들 정보가 다 나와있기 때문에 그걸 들키면 저의 가면과 수많은 거짓말들도 다 들키게 될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회심이 안되고서는 도저히 내어줄 수 없는 정보들이 텔레그램 안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마침내 저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때 까지는 계속 신천지가 틀린 것 같은 부분들이 나와도 애써 외면하며 신천지로 다시 돌아가서 확인해보면 분명 답이 있을거야, 내 생각이 모자란거야, 했다가 그제서야 “내가” 여기서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4년 반만에 처음 “내가 진짜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거기서 게임은 끝났습니다.
신천지 편에서 애써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니,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이틀이라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쌓아뒀던 틀린 부분들을 다시 돌아보고, 실상이 조작되었다는 것 등을 확인하자 아, 정말 틀렸구나, 하는 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엄청나고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평화운동, 만국회의 등도 통일교에서 몇십년 먼저, 그것도 더 엄청나게 해왔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저는 방에 혼자 누워서 울지도 않고 그저 헛웃음만 계속 웃었습니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 신천지가 제 전부였기 때문에 그만큼 공허감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지만, 정말 하나님과 가족들, 구리초대교회 식구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고 정말 많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정말 택한 자들을 각 사람에 맞게 때를 정하시고 계획하셔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가슴깊이 느낍니다. 저는 제가 태어나서부터 하나님 없이 힘들었던 20살 때까지의 그 길과, 그 후 신천지에 가게 하시고 결국은 빼내셔서 참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신 그 길을 하나님께서 모두 인도하셨다고 확신합니다. 제 영혼으로 하여금 갈급함을 느끼게 하셔서 결국은 하나님을 찾게 해주시려고, 하나님이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이라는 것을 간절히 느끼게 하시려고 모든 과정을 이끌어 주신 겁니다.
이런 과정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느끼고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천지로 인해 저도 부모님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니, 저로서는 감사, 또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 오빠는 아직은 교회를 나오지 않지만, 후속교육을 다시 들으며 제 신앙을 바로 세우고 오빠와도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또 참 너무 좋은 건, 가족 간의 회복입니다. 얼마 전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태풍이 왔는데도 저는 그냥 온전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더라고요.
끝으로 저를 살게 해주신 하나님, 오직 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지옥같은 몇 개월을 견디시고 참고 기다려주신 부모님, 비록 작전이긴 했지만 유일하게 제 편을 들어주며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던 우리 오빠,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주신 큰집 식구들, 특히 몸도 안 좋으신데 펜션에서 계속 도와주시고 한결같이 저를 믿어주신 큰엄마,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의 기도로 상담으로 정보로 도와주신 호♡이네 가족과 구리초대교회 식구들까지,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정말 한 분이라도 없으셨다면 저는 나올 수 없었을 거에요. 그리고 제 신앙에 자극과 도움을 주고 제 마음의 빈자리를 너무나 많이 채워주고 있는 우리 동기들과 청년들이 너무 고맙고 소중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회복되어서 아직 저곳에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랑하는 지체들을 살리는 데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천지 예수교 서울야고보지파 서울교회에서 4년 반 정도 헌신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올해 5월 22일에 건져진 전♡지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천지가 지상천국이요 유일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확신했던 제가, 이렇게 마음을 돌이켜 그곳에서 악명 높았던 구리초대교회에서 간증을 다 하다니, 정말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와 저희 가족은 5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 무신앙이었습니다. 큰집 식구들이 모두 독실하셔서 저희 집안을 계속 전도하시려고 하셨고 명절 때마다 큰아버지 주도 아래 예배를 드리곤 했지만, 각자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외고입시다 대학입시다 하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점수와 대학으로 보는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만 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해야 부모님이 기뻐하시고 또 나중에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제 꿈의 발판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그 때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참 힘들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에는 제 나름의 질풍노도의 시기와 학업에 대한 압박이 겹쳐 정말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업도 학업이지만, 하나님을 모른 채 아무 소망 없이 중심 없이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원하는 대학에 붙어서 잠시 동안 참 기뻤지만, 그 후에는 굉장한 공허감이 밀려왔습니다. 눈 딱 감고 전력질주로 드디어!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눈을 떠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고 내가 왜 전력질주를 한 걸까, 정말 열심히 달렸는데, 왜 달린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개 숙이고 책만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서 제 주위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에 대해,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한 겁니다. 나는 왜 태어나서, 왜 살아가고, 이 세상과 많은 인생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답을 수없이 들어왔어도 저로서는 모두 뭔가 부족했고, 제 나름의 생각을 거듭한 결과는 “인생무상”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니까 결국 인생의 의미는 없고, 이 썩은 세상을 정화할 수 있는 답도 없고, 또 신이 있는데 인생과 세상이 이럴 리 없으니 신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그렇게 무신론자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뒹굴방굴하며 누워있는데 불현 듯 ‘큰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나보고 교회 다니라고 하시는데, 교회가 뭐가 그렇게 좋길래 그렇게 가보라고 하시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딱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신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일단 궁금하니까 한 번 가보기는 하자, 하는 생각에 기독교였던 친구들에게 아직도 교회 나가냐는 문자를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귀신같게도 그 중 1명만이 지금도 교회 다니고 있으니 같이 가자는 답장을 해줬는데, 이 친구가 향후 저의 인도자가 됩니다. 신천지로 인도해주는 인도자. 더 놀라운 건 사실 다른 1명도 똑같은 답장을 해줬는데, 제가 잘못 읽고 넘겨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신천지로 보내시려고 작정을 하시고 눈을 가려주신 것이죠.
그렇게 저는 위장교회로 인도가 되어 잎사귀를 만나 그간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했던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놓았고, 그 중 하나를 그분이 신천지 식으로 풀어주니 처음으로 뭔가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앞으로 자기가 이런 신앙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데 괜찮겠냐는 그 분의 제안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덥석 잡고 말씀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신앙도 하나님도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한 건데, 그 때 당시 저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주의였습니다. 머리만 커가지고 제 머리를 믿었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정말 감사한 게, 신천지에 가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믿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 같아요. 사람의 머리로 흠이 없다고 생각했던 신천지 교리도 결국은 오류 투성이였다는 것을 깨닫고, 내 머리도 믿을 게 못 되며,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의 논리와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신천지에 다녀와서야 느끼게 되었거든요.
신천지에 입교해서는, 그 때 제 입장으로는 처음 만난 하나님과 처음 해보는 신앙이라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답을 찾아 헤매던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고 답을 알려주셔서 나를 살게 하셨다는 생각에 어느 날은 가슴 무너지도록 감사해서 화장실 물을 틀어놓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107:19-20의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는 말씀이 정말 저에게 응한 것 같았습니다. 신천지 나와서 이 성구가 더 와닿고 감동이 되는데요, 그래도 그때는 인생무상이었던 제게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목적과 소망과 답을 제시해주니, 저는 물 만난 고기마냥 매일을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기들 중에 제일 먼저 구역장이라는 사명을 맡고, 새신자팀장, 새신자부장 등을 하며 정말 열심히 하였습니다. 항상 무기력하던 저에게 그런 열정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신천지 청년들과 함께 새벽부터 새벽까지 함께 부대끼며 동고동락하다 보니, 정말 그때 당시로는 가족 이상으로 서로 소중하고 사랑하는 지체들이었습니다. 우린 정말, 영원히, 영원히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지내자, 라는 말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영생할거니까 정말 현실이 될 거라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열심히 안하는 사람도 있지만, 열심히 하는 청년들은 정말 먹을 것 못 먹고, 잘 것 못 자면서 헌신합니다.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저도 복음방을 2-3개씩 하느라 일과를 마치고 회의까지 끝내면 밤12시가 넘는데, 그 때부터 또 다음날 복음방 준비하느라 새벽4시까지 24시간 까페에서 교안준비하고 잠시 엎드려 잤다가 첫차타고 학교가고, 학교가서 계속 졸다가 학교끝나면 또 교회로 달려가고, 상담하러 가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진짜 몸이 축나는 것을 느끼고 정말 몸이 썩는 것 같다 싶게 힘들더라도 오히려 정신만은 말짱하고 너무나 보람차고 행복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가치있는 일인 영혼구원을 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우리 신천지인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어요. 저는 가끔 제가 이 정도였는데 목사님 전도사님은 어떠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마약이라는 표현이 회심되기 전에는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지금은 정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몸은 피폐해지더라도 정신은 황홀하게 하는 강한 마약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행복하긴 했어도 스트레스는 정말 엄청났던 것 같습니다. 사명이 올라갈수록 늘어나는 업무에, 기한을 어기면 안 되는 하늘군대였기 때문에 항상 쫓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제 동료 사명자들의 소원이 하루만 잠수타보고 싶다,였습니다. 부장이 되고는 업무가 갑자기 너무 많아져서 하루는 그러면 안 되는데 신천지 노트를 가방에 몰래 넣어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 아 안되는데...하다가 잠들어 버렸어요.
그날 밤이 하나님이 정하신 D-day였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게 걸릴 줄이야. 가방을 생전 안 뒤지시던 어머니를 믿고 자료를 가져왔던 건데, 그날 밤에 어머니가 꿈을 꾸신 겁니다. 꿈 속에서 깊고 어두운 물가를 제가 위태위태하게 걷고 있었고, 그 물이 저를 삼킬 것 같은 불안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 꿈을 꾸시고는 너무 불안해서 새벽에 저를 확인하려고 들어오셨는데 제가 마침 그때 화장실에 갔고, 제가 방을 비우니 가방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에 뒤져봤더니 신천지 공책이 딱..! 있었던 겁니다. 아, 그 때는 정말 평생 못 잊을 것 같은데, 어머니가 안방에 앉아서 제 공책을 펄럭펄럭 펼쳐보시며 “예지야, 너 신천지 다니는구나?” 하시는데... 와.... 심장이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고 그 공책 맨 앞에 새신자부장 전예지, 하고 조직도가 붙어있었기 때문에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신천지 맞다, 했고, 그 때부터 말로만 듣던 핍박이 시작되었죠.
처음에는 임용고시 합격하면 신천지 말씀을 들어보겠다는 부모님을 전도하기 위해 임용고시 공부를 2달 정도 했습니다. 신천지인에게 가족전도는 최고로 간절한 소망이잖아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신천지 생각만 더 나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내가 이러고 있나, 엄청난 고뇌 끝에 내가 더 열심히 하면 우리 가족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거라 믿고 신천지 강사가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게 됐습니다.
심각성을 아신 부모님께서 큰집과 구리초대교회에 도움을 요청하셨고, 권사님인데 큰엄마 뻘이신 분이다,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는 말씀에 큰엄마 뻘이시면 뭐...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잡은 날짜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반증교육도 받긴 했지만, 살기 위해서는 신천지 교리 몇 자라도 더 봐야했을 그 기간에, 저는 거의 처음으로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느라 심지어 복음방까지 취소하는 등 이상하게도 교리공부를 하기가 싫은 겁니다. 그리고 제가 교관이다 보니 신천지 쪽에서도 저를 믿고 제가 알아서 하려니, 하고 관리를 거의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집에서 강간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큰엄마 뻘이신데 뭐,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성경을 잘 아시더라고요. 그리고 돈 벌려고 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간절해 보이고 진심이 느껴져서 충격을 좀 받았습니다. 몸이 아프신데도 무리해서 하루종일 연거푸 강의를 하시는거에요. 그리고 신천지에서 보여준 사진은 완전히 메두사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강아지 같이 온화하게 생기신 거에요. 여러모로 당황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9일간 제 모든 지식과 억지를 펼쳤고, 중간 중간 신천지 교리가 좀 이상한데..?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제가 우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닌 척 하며 나는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버텼습니다.
중간에는 신천지가 아닌 척 위장하고 저희 집에 드나들었던 인도자가 전해준 신천지의 명령에 따라 경찰서로 갔다가 가출도 한 번 했는데, 정말 하고 싶지 않았고 마음이 탔지만 순종이라는 명분이 그때는 왜 그렇게 컸던지요. 그.런.데. 그 다음날 지파장과 중진들이 직접 피드백을 해주는데, 부모님이 신천지 와서 시위할 경우 너는 엄마 학교에 찾아가서 맞시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경찰서 가는건 꾸역꾸역 했어도 진짜 맞시위라니...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고, 인도자가 부모님을 속인 문자를 보고 웃는 지파장과 청년회장을 보고 사단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때는 내가 왜 이러지, 독이 알게 모르게 내 안에 퍼졌나보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독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이 제 안에 들어와 영향을 줬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틀려도 가겠다는 저의 발언에 팬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 가서 계속 버텨봤는데, 아무리 버텨 봐도 아버지가 굽힐 생각이 저만큼이나 없으신 것 같은 거에요. 신천지 안 간다고 할 때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고. 그래서 설마 그러겠어, 하고 한 달쯤 버텨봤는데 오빠가 한달치 식량을 또 사오는 거에요. 그때의 절망감이란...
가면을 쓰지 않으면 진짜 여기서 평생 썩을수도 있겠단 두려움에 가면을 썼고, 가면을 쓸 때마다 여기 앉아있는 우리 호♡이, 소♡이, 지♡이, 영♡ 등등의 사랑하는 우리 초대교회 식구들이 그때 그때 적발해주는 바람에 계속 들키고... 지금도 생각나는게, 제가 한창 가면을 쓰고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시면서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초대교회에 너를 아는 사람이 많아. 잘-생각해 봐.”라고 하시는데...와... 정말 티는 안 냈지만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식은땀이 막... 애써 태연한 척 “그렇겠죠.”라고는 했지만 아버지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을 그 의문의 사람들이 너무 두렵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여담이지만 바로 그 원망스러웠던 배도자들과 어제는 등산도 가고 저녁도 먹고 했는데, 아직도 가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고 사람인생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구나 싶습니다.
어쨌든 그러다가, 어찌어찌 가면을 쓰는 데 성공해서 드디어 내일 집에 간다, 했는데. 갑자기 그 다음날 아버지가 텔레그램 비밀번호를 불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고 하시는거에요. 텔레그램 안에는 신천지 정보들과 열매들 정보가 다 나와있기 때문에 그걸 들키면 저의 가면과 수많은 거짓말들도 다 들키게 될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회심이 안되고서는 도저히 내어줄 수 없는 정보들이 텔레그램 안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마침내 저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때 까지는 계속 신천지가 틀린 것 같은 부분들이 나와도 애써 외면하며 신천지로 다시 돌아가서 확인해보면 분명 답이 있을거야, 내 생각이 모자란거야, 했다가 그제서야 “내가” 여기서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4년 반만에 처음 “내가 진짜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거기서 게임은 끝났습니다.
신천지 편에서 애써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니,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이틀이라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쌓아뒀던 틀린 부분들을 다시 돌아보고, 실상이 조작되었다는 것 등을 확인하자 아, 정말 틀렸구나, 하는 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엄청나고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평화운동, 만국회의 등도 통일교에서 몇십년 먼저, 그것도 더 엄청나게 해왔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저는 방에 혼자 누워서 울지도 않고 그저 헛웃음만 계속 웃었습니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 신천지가 제 전부였기 때문에 그만큼 공허감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지만, 정말 하나님과 가족들, 구리초대교회 식구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고 정말 많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정말 택한 자들을 각 사람에 맞게 때를 정하시고 계획하셔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가슴깊이 느낍니다. 저는 제가 태어나서부터 하나님 없이 힘들었던 20살 때까지의 그 길과, 그 후 신천지에 가게 하시고 결국은 빼내셔서 참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신 그 길을 하나님께서 모두 인도하셨다고 확신합니다. 제 영혼으로 하여금 갈급함을 느끼게 하셔서 결국은 하나님을 찾게 해주시려고, 하나님이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이라는 것을 간절히 느끼게 하시려고 모든 과정을 이끌어 주신 겁니다.
이런 과정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느끼고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천지로 인해 저도 부모님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니, 저로서는 감사, 또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 오빠는 아직은 교회를 나오지 않지만, 후속교육을 다시 들으며 제 신앙을 바로 세우고 오빠와도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또 참 너무 좋은 건, 가족 간의 회복입니다. 얼마 전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태풍이 왔는데도 저는 그냥 온전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더라고요.
끝으로 저를 살게 해주신 하나님, 오직 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지옥같은 몇 개월을 견디시고 참고 기다려주신 부모님, 비록 작전이긴 했지만 유일하게 제 편을 들어주며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던 우리 오빠,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주신 큰집 식구들, 특히 몸도 안 좋으신데 펜션에서 계속 도와주시고 한결같이 저를 믿어주신 큰엄마,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의 기도로 상담으로 정보로 도와주신 호♡이네 가족과 구리초대교회 식구들까지,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정말 한 분이라도 없으셨다면 저는 나올 수 없었을 거에요. 그리고 제 신앙에 자극과 도움을 주고 제 마음의 빈자리를 너무나 많이 채워주고 있는 우리 동기들과 청년들이 너무 고맙고 소중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회복되어서 아직 저곳에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랑하는 지체들을 살리는 데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도록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