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문
안녕하세요. 저는 신천지에서 시몬지파 명동센터에서 약 2년 정도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나오게 된 정♡구라고 합니다.
신천지에 들어가기 전, 저는 모태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신앙에 대해서 고민을 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 찬양팀을 들어가게 되어서야 진지한 신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2년 동안 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찬양팀 베이스로, 학교에서는 반장이라는 사명이 저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반장을 절대로 대충하거나 형식적으로 하고 싶지 않았고 아주 조심스럽고 중요한 사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사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 분위기 조성이었습니다. 수업시간이 시작되면 반 아이들을 조용히 만드는 것이었죠. 저는 그것 때문에 항상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왜냐면 선비같이 조용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저보다 키도 크고 힘도 쌘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이 반장을 맡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지만 너무나도 어려웠고 무서웠고 조롱도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자신감이 없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 도서관에 저 혼자 앉아 있던 때였습니다. 저보다 후배인 남학생 두 명이 제 옆에서 하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한 명이 다른 한명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렇게 애들한테 소리 쳐도 안 무섭냐?” 그러자 그 질문을 들은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애들이 나한테 괴롭히면 담임한테 이르면 돼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대답을 듣고서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이 친구가 한낱 인간인 담임 선생님을 의지하는데도 이렇게 담대한데 그 인간보다 크신 하나님도 믿는다는 나는 왜 이렇게 담대하지 않는 걸까?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걸까?
그래서 저는 그 때부터 나의 믿음과 구원에 대해서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믿음은 구원 얻을 믿음인가, 구원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진정한 구원인가 등의 많은 신앙적인 고민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다 읽진 못했지만 칼빈의 기독교 강요,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마틴 로이든 존스 설교집 등을 읽으면서 교리적으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까지도 이러한 고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중 제일 힘든 것이 구원의 확신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2학년이 끝나고 나서는 장학금과 사법시험과 신앙 이 세 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게 너무 너무 힘들어서 결국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신앙의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재학 중엔 부족했고 결국 휴학으로 신앙을 회복할 시간을 갖자고 스스로 결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휴학을 하고 스스로 성경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지만 그래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가 2014년 1월~7월 사이였는데 저는 그때 정말 자살하고 싶었고 차라리 교통사고 나서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나에 대한 가치비하, 그리고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는 내 구원에 대한 점점 높아져만 가는 고뇌 이 두 가지가 항상 절 지옥으로 데려갔었습니다. 하루는 너무나 괴로워서 집에 아무도 없을 때 3~4시간씩 울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2014년 7월 말 과천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도중 쉬는 시간 혼자 앉아서 “제발 하나님 만나게 해주세요. 저는 하나님을 모르겠어요.”라고 눈물을 참아가면서 기도했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단념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사당역 지하철 안에서 “안녕하세요~ 혹시 노래 좋아하세요?!”하면서 밝은 여자가 저에게 기습적으로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저는 정말정말 정말 깜짝 놀라서 1분 동안 계속 웃음을 참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그 밝은 분위기가 좋았고 신앙에 대한 질문을 할 때에도 저의 솔직한 신앙상태와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복음방을 들으면서도 그 이전엔 칼빈의 기독교 강요처럼 어려운 말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성경만 가지고 하는 교육방식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신천지에 들어가게 되었고 배운지 2주 뒤에 이곳이 신천지라는 신천지 오픈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천지라는 곳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아무 감정이 없다가 한 시간 한 시간 지나면서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의심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는 성경적이었을 진 몰라도 그 다음부터는 비성경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사랑, 나의 구주, 나의 총회장님’이라는 영상이 더욱 저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구원자가 되는 것은 너무 거북했고 비성경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성경적이었으니 저는 ‘들어는 보고 판단하자’라는 제 가치관에 따라 2014년 8월부터 부모님께 사법시험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매일 센터를 갔었고 잎사귀도 하고 수료도 하고 입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천지에서 말씀을 들을 때 제가 의심하고 들었기 때문이었는지 은혜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고 매우 힘들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놀랍다고 하지만 저는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고 그런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예수교긴하지만 예수님보단 이긴자가 주인인 분위기, 예수님보다 이긴자가 더 중요한 분위기 또한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 ‘아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시지 않는 거겠지.’라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말씀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잎사귀 사명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명을 시켰기 때문에 말씀을 공부할 시간이 정말로 부족했습니다. 오히려 말씀 공부하려는 생각보다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져만 갔습니다. 항상 노방전도를 하면서 하루 목표를 이뤄야 했었고 전도를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이지는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불편한 시선과 난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시선들이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거기서는 말로는 말씀을 많이 봐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성도들에게는 말씀을 볼 시간을 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제가 다녔던 명동에서는 말씀을 공부 하려고 책상을 피면 남들은 힘들게 전도하고 있는데 나 혼자 쉬는 것 같기도 해서 함부로 책상을 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수강생 때 전도한 친누나가 신천지에 다닌다는 물증이 생기면서 그 유명한 핍박의 시작 신천지 오픈이 저에게 시작되었습니다.
부모님과의 첫 이별은 새벽2시에 정택주 전도사님을 부르시면서 저지러진 말다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정택주 전도사님을 제가 자는 도중에 갑자기 부르셨지만 저는 필사적으로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결정적인 상황에서 간신히 집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작년 6월경부터 올해 5월 말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집 밖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편의점 야간 알바, 택배 상하차,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하루 10시간의 고된 막노동 등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활을 보내면서 어쩌다 명동 강피연 팀장이라는 사명으로 보냈습니다. 강피연의 활동목적은 핍박자들이 핍박을 받으면 대부분 신앙이 약해지는데 그러한 영적 폐단을 청산하고 핍박과 상관없이 신천지 생활을 열심히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정신교육과 반증교육을 명동에서 대표로 했었던 사람이 저였고 그런 제가 지금 이 시간 간증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순과 억지논리로 뒤범벅된 신천지 교리여서 그랬는지 그러한 교리에 기반한 정신교육과 반증교육을 했던 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났습니다. 항상 제가 마른 뼈 같았고 믿음이 커지긴 커녕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지치기만 했습니다.
강피연 활동 중 하나가 3인 1조로 구리초대교회에 쳐 들어가서 질문하고 오는 게 있었는데 저는 그걸 세 번 했습니다. 그것을 하는 목적은 일부러 곤란한 질문을 해서 – 정확히 말하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아니라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이었죠 – 대답을 못하는 모습을 보고 믿음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왜 3인 1조일까. 약간 이상했습니다. 저는 혼자가면 질문을 제대로 못하고 대화를 하게 되면 도리어 영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의 생각은 구리초대교회에 쳐들어갈 때 신 목사님과 의1:1 만남을 통해 확신이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어떤 사람이 부활해?”라는 질문에 저는 속으로 ‘아이고 이런 걸 물어 보시네’ 하면서 “죽은 사람이죠.”라고 대답하였고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저는 ‘아 이래서 영이 죽는 거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신천지 교리에 따르면 내가 부활을 하는 건데 나는 육은 살아있고 영도 계시 말씀으로 살아있는 것(영의 부활)인데 부활의 주체가 되려면 최소한 영이나 육 둘 중에 하나는 죽어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신 목사님과의 만남 직후 바로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정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내 생각이 깨져도 이렇게까지 깨질 줄은 몰랐고 선악과 중에 이런 선악과는 처음 먹어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교리적으로 이해가지 못한 것들과 총회장에 대한 의심으로 인해 겪었던 신앙적 갈등으로 인해 억눌려왔던 저의 괴로움이 한층 더해만 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만나고 나서 저는 ‘하나님, 신천지가 진리라면 믿음을 더해주시고 신천지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제가 신천지에서 나올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세요.’ 라고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지쳐가는 상황에 저희 어머니께서는 응급실에 실려 가셨고 또 설상가상으로 외할아버지께서도 거의 돌아가시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신천지에 가기 전에 겪었던 그 자살충돌에 맘먹는 괴로움이 또 다시 한번 저에게 재현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사인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때론 어머니는 말로는 저를 뭐라 하셔도 행동으로는 다 뜯어져가는 제 신발을 보시고 말없이 새 신발을 사주시기도 하고 눈물이 느껴지는 카톡을 볼 때 제가 너무 악하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행동이었죠.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신천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전도 전도만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천지가 천국이라면 이런 반인륜적인 천국에서 그것도 1000년이나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굳어졌고 결국 저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일보고에 용기를 내어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는다고 했고 이러한 저의 상태를 본 구역장은 저를 강피연 팀장을 내려놓게 하고 강피연 팀장의 사명이 이렇게 너를 만들었다며 지역에서 너를 관리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상 이하로 관리도 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저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로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신천지에 대한 저의 마음은 심리적으로 서서히 멀어져 갔고 공간적으로도 멀어지면서 신천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또한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신천지 교리를 들을 때 가졌던 그 가치관. ‘들어는 보고 판단하자’라는 생각이 돌아왔고 간사님을 통해서 교리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마음이 굉장히 많이 치유가 되었습니다. 진심과 말씀에 기반한 상담을 받으면서 정말로 많이 느낀 것은 ‘하나님이 정말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거구나!’, ‘이곳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라는 것을 정말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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