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시작한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무렵에 세 명의 모임은 갑작스레 끝나게 되었다. 단골카페에서 J언니가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했다. 카페에서 언니와 인연이 있는 귀한 선교사가 특강을 한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했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특강 당일에는 우리 셋 말고도 십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왔다. 선교사라는 남자는 제일 늦게 도착했다. 사람들은 그를 선교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강사님이라고도 불렀다. 남자는 30대 후반 정도 되어보였다. 목소리나 풍기는 분위기에서 목회자 냄새가 물씬 났다. 그의 외모나 말투에서 나는 신뢰감을 느꼈다.
강사는 우리를 학생 한 명 한 명 대하듯이 살피고 인사했다. J언니가 서울에 있는 K대 신학과 출신이라며 강사를 소개해줬다. 강사는 신앙에 관해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들을 해줬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따라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칠판에 판서까지 하며 강의를 해주니까 귀에 쏙쏙 들어왔다. 강사의 내공과 강의력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강사는 이번에 내려와서 주변의 권유로 선교센터에서 세미나를 열게 되었는데,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특강 한 번으로 끝이라고 여겼지, 다음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J언니가 센터에 들어가려면 면접을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면접이라고 하니 최근까지 보러 다녔던 게 생각이 나서 물었다.
정장을 입고 가야 되는 거야?
ㅋㅋ아니~ 대학면접 노노~
그러나 막상 면접날이 되자 망설여지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고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새 학기에 타도시로 통학을 하면서 다녀야되는데 내가 아는 내 체력상 도무지 무리일 것 같았다. J언니에게 안하겠다고 말은 못하겠고, 하고 싶지는 않고, 고민하다가 문자를 보냈다.
언니. 몸이 아파서 면접 못 볼 것 같아…….
내 바람과는 달리 면접날은 다른 날로 옮겨졌다. 그 때까지도 나는 면접 당일에만 못 보러 가면 센터에 합격하지 않겠거니 여겼던 것 같다. J언니 입장에서도 애가 탔을 것이다. 나는 한참을 밍기적 거리다가 결국 집을 나섰다. 타도시로 통학을 하려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야 했는데 센터는 터미널 바로 옆에 있었다. J언니와 중간에 만나서 센터로 향했다.
센터이름이 아닌 다른 간판이 달려있는 게 특이했다. 혼자 왔다면 한참 찾았을 것 같았다. 언니에게 간판이 왜 이러냐고 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들어온 지 얼마 안돼서 곧 바꾸실 거라고 하시더라고.”
언니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센터는 지하와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있었지만 나는 지하의 존재는 힐끗 쳐다보기만 했을 뿐, 그때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2층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 왼쪽에도 문이 있었는데 그쪽도 쓰는 공간인 것 같아보였다. 들어가자 제일 먼저 한 눈에 들어온 건 정면 벽면 전체를 차지하며 걸려있는 흑칠판과 줄지어 놓여있는 교실용 책상과 의자들이었다. VTR시스템도 갖춰져 있었고, 양쪽 벽면에는 기독교 색채가 나는 포스터가 붙어있었으며 게시판이 꾸며져 있었다. 포스터만 아니라면 교회라기보다는 교실이나 강의실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입구 쪽 테이블에 앉아서 대기했다. 우리말고도 두어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고 앞에 면접자가 있는 듯했다. 그때 정장을 입은 여자가 다가와 펜과 종이를 한 장 주었다.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본인을 전도사라고 소개했다. 종이는 정말 면접수험표처럼 사진을 붙이고 간단한 신상명세를 적게 되어있었다. 나는 언니가 챙겨준 대로 가지고 온 사진을 풀로 붙였다. 전도사가 물었다.
“사진 언제 찍은 거예요?”
“고 2때요.”
“완전 어려 보인다~ 중학생 같이 나왔어.”
전도사가 활짝 웃었다. 말투와 표정, 얼굴 생김새에서 선함이 묻어나왔다. 전도사는 J언니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화제를 나를 중심으로 관심을 주는 게 싫지 않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J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준다는 것이 새로웠다.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따뜻함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전도사가 먼저 나가고 우리는 조금 후에 아까 들어올 때의 왼쪽 방으로 갔다. 그 곳은 부엌과 몇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고 안내된 안쪽 방으로 들어가니 책상 앞에 특강 때 봤던 강사가 앉아 있었고, 아까 봤던 전도사와 다른 전도사 한 명이 강사 양 옆으로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면접용 의자도 있는 것이 사뭇 면접 분위기스러웠다.
강사는 몇 가지 질문을 물어봤고 내가 대답할 때마다 사람들은 귀엽다는 듯 웃었다.
“3월부터 월, 화, 목, 금 수강을 해야 하는데 타지에서 통학하려면 힘들지 않겠어요?”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고 아차 싶었다. 내가 못 들었던 얘기라는 듯 당황하자 J언니는 전에 이야기했지 않았냐고 같이 당황해했다. 나는 속으로 ‘학교도 아닌데 꼭 백퍼센트 출석을 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생각했다. 강사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제가 가게 될 학교가 수업 말고도 기타 행사나 학번군기문화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걱정이 되요."
“내가 다녔던 학교도 서울에서 군기세기로는 유명한 학교였어요. 막걸리대학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을 정도니까. 행사에 참여 안했다고 얼차려도 받아 봤구요. 그런데, 하나님 믿고 의지하면 다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결국 선배들도 나는 건들지 않더라고.”
나는 강사의 말에 위안을 얻고 센터를 나왔다.
나의 걱정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던 것이, 2월 중순 즈음부터 대학에서 연락이 오면서 오티 참석에 대해서 계속 공지를 하기 시작했다. 08학번 직속선배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오티 참석하지? 내가 번호들 보낼 테니까 선배들한테 인사문자 보내드려~
그러면서 전화번호 열 한 개가 문자로 왔다. 첫 번째 번호가 97학번 선배의 것이라는 걸 확인한 나는 황당해서 문자를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자유로운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 될 거라는 예감에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시키는 대로 안하면 입학도 하기 전에 찍힐 게 분명하니 문자를 다 돌렸다. 답장을 해주는 선배도 있었고 안하는 선배도 있었다.
오티날이 되었다. 나는 걱정과 두려움을 부모님과 J언니에게 한가득 쏟아내고 버스에 올랐다. 먼저 과별 회장단 소개를 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강의를 듣고, 수강신청 요령을 듣고, 번호선배와 인사를 하고, 2PM과 주얼리S의 공연을 봤다. 내가 키가 작아서 맨 앞줄에 앉아있었는데, 가수들이 나올 때 사람들이 앞으로 계속 몰려나오는 바람에 스피커 앞까지 밀려서 고막이 터질 뻔했다. 가까스로 멍한 정신을 차리고 과별로 모이는 자리로 향했다.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이었다. 선배들은 무서웠고, 위압적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무언으로 술을 마시라 말하고 있었고, 짓궂었다. 먼저 나를 포함한 새내기들이 차례로 나와서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 더러는 장기자랑을 했다. 나는 목소리가 작다고 지청구를 먹었다. 나는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조를 여러 개 나누어 바닥에 앉아서 술게임을 했다. 가운데 잔뜩 쌓아놓은 맥주병과 소주병들이 얼마나 무섭게 보였는지 모른다. 번호선배가 다가와서 컨디션을 건네주었다.
“미리 마시는 게 효과가 좋대.”
선배는 그렇게 속삭이고는 돌아갔다. 고맙기도 했지만 대체 얼마나 먹이려고 약부터 주나 싶었다.
조장은 07학번 여자선배였는데 인상이 날카롭고 한 성깔 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학생회 임원들도 다 3학년이었고 대부분의 분위기주도를 07학번이 하고 있었다.
‘J언니도 07학번인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J언니가 보고 싶었다.
반갑게도 같은 조에 남자동기 Y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언뜻 들으니 목사아들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대놓고 마시지 않겠다고 하진 않았지만 첫 술자리에 폭음을 하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계속 나누어서 마셨다. 선배들이 눈치를 주는 게 느껴졌지만 내가 워낙 조그만데다 떨고 있는 게 보였는지 봐주는 것 같았다. 조장선배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장기자랑에 걸렸을 때 아는 노래가 발라드밖에 없어서 버즈노래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05학번 선배한테 술을 가득 따라주는 등 몇 가지 실수를 하고난 뒤 나는 지쳐서 기둥에 몸을 기댔다. 자리가 섞여버려서 관심이 분산되어버린 틈이었다. 같이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던 여동기 E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E와 몇 마디하며 나와 잘 맞는 친구라고 느꼈고, 같이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기둥에 기대어 주류의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서, J언니와 문자를 했다. 문자에서도 언니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E와 있는데 우리가 많이 취했는지 걱정이 된 회장선배가 다행히 우리를 방으로 들여보내줬다.
다음날 숙소에서 번호선배와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데 어제의 조장선배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들렸다.
“09 애들이 너무 몸을 사려.”
언뜻 들어도 내 얘기였다.
오티에서 학교와 과에 대해 좋은 인상은커녕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오히려 통학을 결정한 게 잘한 거라고 여겼다.
오티 때 회장단 총무선배가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는지 잘 어울리지도 않고 술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봤다. 나는 반갑고 친해지고 싶었는데 마침 선배가 회계 관련한 안내 문자를 돌렸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선배 안녕하세요~ 입금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교회 다녀요^^
어 그래ㅋㅋ 반가워ㅋㅋ
나는 J언니와 H언니에게도 친해지고 싶은 선배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언니들의 반응이 떨떠름했다. 꼭 J언니 이야기를 했을 때 과외선생님이나 엄마의 반응 같았다.
수강신청 날에 시간표를 짰는데 한 번 더 놀란 것은 수강신청이 경쟁이 상당히 치열해서 수강을 원한다고 다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알람을 맞춰두고 긴장한 채 시간이 되면 광속클릭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공강 없이 시간표를 채웠지만 개강 첫째 주에 목요일이 공강이 되어 주4일만 갈 수 있도록 시간표를 바꿔버렸다.
특강 당일에는 우리 셋 말고도 십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왔다. 선교사라는 남자는 제일 늦게 도착했다. 사람들은 그를 선교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강사님이라고도 불렀다. 남자는 30대 후반 정도 되어보였다. 목소리나 풍기는 분위기에서 목회자 냄새가 물씬 났다. 그의 외모나 말투에서 나는 신뢰감을 느꼈다.
강사는 우리를 학생 한 명 한 명 대하듯이 살피고 인사했다. J언니가 서울에 있는 K대 신학과 출신이라며 강사를 소개해줬다. 강사는 신앙에 관해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들을 해줬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따라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칠판에 판서까지 하며 강의를 해주니까 귀에 쏙쏙 들어왔다. 강사의 내공과 강의력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강사는 이번에 내려와서 주변의 권유로 선교센터에서 세미나를 열게 되었는데,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특강 한 번으로 끝이라고 여겼지, 다음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J언니가 센터에 들어가려면 면접을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면접이라고 하니 최근까지 보러 다녔던 게 생각이 나서 물었다.
정장을 입고 가야 되는 거야?
ㅋㅋ아니~ 대학면접 노노~
그러나 막상 면접날이 되자 망설여지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고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새 학기에 타도시로 통학을 하면서 다녀야되는데 내가 아는 내 체력상 도무지 무리일 것 같았다. J언니에게 안하겠다고 말은 못하겠고, 하고 싶지는 않고, 고민하다가 문자를 보냈다.
언니. 몸이 아파서 면접 못 볼 것 같아…….
내 바람과는 달리 면접날은 다른 날로 옮겨졌다. 그 때까지도 나는 면접 당일에만 못 보러 가면 센터에 합격하지 않겠거니 여겼던 것 같다. J언니 입장에서도 애가 탔을 것이다. 나는 한참을 밍기적 거리다가 결국 집을 나섰다. 타도시로 통학을 하려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야 했는데 센터는 터미널 바로 옆에 있었다. J언니와 중간에 만나서 센터로 향했다.
센터이름이 아닌 다른 간판이 달려있는 게 특이했다. 혼자 왔다면 한참 찾았을 것 같았다. 언니에게 간판이 왜 이러냐고 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들어온 지 얼마 안돼서 곧 바꾸실 거라고 하시더라고.”
언니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센터는 지하와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있었지만 나는 지하의 존재는 힐끗 쳐다보기만 했을 뿐, 그때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2층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 왼쪽에도 문이 있었는데 그쪽도 쓰는 공간인 것 같아보였다. 들어가자 제일 먼저 한 눈에 들어온 건 정면 벽면 전체를 차지하며 걸려있는 흑칠판과 줄지어 놓여있는 교실용 책상과 의자들이었다. VTR시스템도 갖춰져 있었고, 양쪽 벽면에는 기독교 색채가 나는 포스터가 붙어있었으며 게시판이 꾸며져 있었다. 포스터만 아니라면 교회라기보다는 교실이나 강의실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입구 쪽 테이블에 앉아서 대기했다. 우리말고도 두어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고 앞에 면접자가 있는 듯했다. 그때 정장을 입은 여자가 다가와 펜과 종이를 한 장 주었다.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본인을 전도사라고 소개했다. 종이는 정말 면접수험표처럼 사진을 붙이고 간단한 신상명세를 적게 되어있었다. 나는 언니가 챙겨준 대로 가지고 온 사진을 풀로 붙였다. 전도사가 물었다.
“사진 언제 찍은 거예요?”
“고 2때요.”
“완전 어려 보인다~ 중학생 같이 나왔어.”
전도사가 활짝 웃었다. 말투와 표정, 얼굴 생김새에서 선함이 묻어나왔다. 전도사는 J언니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화제를 나를 중심으로 관심을 주는 게 싫지 않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J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준다는 것이 새로웠다.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따뜻함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전도사가 먼저 나가고 우리는 조금 후에 아까 들어올 때의 왼쪽 방으로 갔다. 그 곳은 부엌과 몇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고 안내된 안쪽 방으로 들어가니 책상 앞에 특강 때 봤던 강사가 앉아 있었고, 아까 봤던 전도사와 다른 전도사 한 명이 강사 양 옆으로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면접용 의자도 있는 것이 사뭇 면접 분위기스러웠다.
강사는 몇 가지 질문을 물어봤고 내가 대답할 때마다 사람들은 귀엽다는 듯 웃었다.
“3월부터 월, 화, 목, 금 수강을 해야 하는데 타지에서 통학하려면 힘들지 않겠어요?”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고 아차 싶었다. 내가 못 들었던 얘기라는 듯 당황하자 J언니는 전에 이야기했지 않았냐고 같이 당황해했다. 나는 속으로 ‘학교도 아닌데 꼭 백퍼센트 출석을 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생각했다. 강사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제가 가게 될 학교가 수업 말고도 기타 행사나 학번군기문화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걱정이 되요."
“내가 다녔던 학교도 서울에서 군기세기로는 유명한 학교였어요. 막걸리대학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을 정도니까. 행사에 참여 안했다고 얼차려도 받아 봤구요. 그런데, 하나님 믿고 의지하면 다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결국 선배들도 나는 건들지 않더라고.”
나는 강사의 말에 위안을 얻고 센터를 나왔다.
나의 걱정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던 것이, 2월 중순 즈음부터 대학에서 연락이 오면서 오티 참석에 대해서 계속 공지를 하기 시작했다. 08학번 직속선배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오티 참석하지? 내가 번호들 보낼 테니까 선배들한테 인사문자 보내드려~
그러면서 전화번호 열 한 개가 문자로 왔다. 첫 번째 번호가 97학번 선배의 것이라는 걸 확인한 나는 황당해서 문자를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자유로운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 될 거라는 예감에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시키는 대로 안하면 입학도 하기 전에 찍힐 게 분명하니 문자를 다 돌렸다. 답장을 해주는 선배도 있었고 안하는 선배도 있었다.
오티날이 되었다. 나는 걱정과 두려움을 부모님과 J언니에게 한가득 쏟아내고 버스에 올랐다. 먼저 과별 회장단 소개를 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강의를 듣고, 수강신청 요령을 듣고, 번호선배와 인사를 하고, 2PM과 주얼리S의 공연을 봤다. 내가 키가 작아서 맨 앞줄에 앉아있었는데, 가수들이 나올 때 사람들이 앞으로 계속 몰려나오는 바람에 스피커 앞까지 밀려서 고막이 터질 뻔했다. 가까스로 멍한 정신을 차리고 과별로 모이는 자리로 향했다.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이었다. 선배들은 무서웠고, 위압적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무언으로 술을 마시라 말하고 있었고, 짓궂었다. 먼저 나를 포함한 새내기들이 차례로 나와서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 더러는 장기자랑을 했다. 나는 목소리가 작다고 지청구를 먹었다. 나는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조를 여러 개 나누어 바닥에 앉아서 술게임을 했다. 가운데 잔뜩 쌓아놓은 맥주병과 소주병들이 얼마나 무섭게 보였는지 모른다. 번호선배가 다가와서 컨디션을 건네주었다.
“미리 마시는 게 효과가 좋대.”
선배는 그렇게 속삭이고는 돌아갔다. 고맙기도 했지만 대체 얼마나 먹이려고 약부터 주나 싶었다.
조장은 07학번 여자선배였는데 인상이 날카롭고 한 성깔 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학생회 임원들도 다 3학년이었고 대부분의 분위기주도를 07학번이 하고 있었다.
‘J언니도 07학번인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J언니가 보고 싶었다.
반갑게도 같은 조에 남자동기 Y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언뜻 들으니 목사아들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대놓고 마시지 않겠다고 하진 않았지만 첫 술자리에 폭음을 하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계속 나누어서 마셨다. 선배들이 눈치를 주는 게 느껴졌지만 내가 워낙 조그만데다 떨고 있는 게 보였는지 봐주는 것 같았다. 조장선배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장기자랑에 걸렸을 때 아는 노래가 발라드밖에 없어서 버즈노래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05학번 선배한테 술을 가득 따라주는 등 몇 가지 실수를 하고난 뒤 나는 지쳐서 기둥에 몸을 기댔다. 자리가 섞여버려서 관심이 분산되어버린 틈이었다. 같이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던 여동기 E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E와 몇 마디하며 나와 잘 맞는 친구라고 느꼈고, 같이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기둥에 기대어 주류의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서, J언니와 문자를 했다. 문자에서도 언니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E와 있는데 우리가 많이 취했는지 걱정이 된 회장선배가 다행히 우리를 방으로 들여보내줬다.
다음날 숙소에서 번호선배와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데 어제의 조장선배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들렸다.
“09 애들이 너무 몸을 사려.”
언뜻 들어도 내 얘기였다.
오티에서 학교와 과에 대해 좋은 인상은커녕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오히려 통학을 결정한 게 잘한 거라고 여겼다.
오티 때 회장단 총무선배가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는지 잘 어울리지도 않고 술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봤다. 나는 반갑고 친해지고 싶었는데 마침 선배가 회계 관련한 안내 문자를 돌렸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선배 안녕하세요~ 입금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교회 다녀요^^
어 그래ㅋㅋ 반가워ㅋㅋ
나는 J언니와 H언니에게도 친해지고 싶은 선배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언니들의 반응이 떨떠름했다. 꼭 J언니 이야기를 했을 때 과외선생님이나 엄마의 반응 같았다.
수강신청 날에 시간표를 짰는데 한 번 더 놀란 것은 수강신청이 경쟁이 상당히 치열해서 수강을 원한다고 다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알람을 맞춰두고 긴장한 채 시간이 되면 광속클릭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공강 없이 시간표를 채웠지만 개강 첫째 주에 목요일이 공강이 되어 주4일만 갈 수 있도록 시간표를 바꿔버렸다.
[출처] 경험담: 7년의 기록(2) (바로알자 신천지) |작성자 새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