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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수능이 막 끝나고.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의 리스트를 적으며 꿈과 희망, 그리고 해방감에 한껏 취해있었다. 수능 성적을 기다리면서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기에 마음껏 퍼질러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년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지치고 고단했고,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생활에 염증이 날대로 난 상태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늘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위안을 얻지 못했고, 소설책을 읽으며 어딘가에 나의 세상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상상하곤 했다.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와 시선을 받으며 성실하게 어긋남 없이 공부를 했던 나는 지원하는 대학 또한 부모님과 상의해서 결정을 했다.
언니를 만난 것은 11월 대학박람회에서였다. 나는 이미 마음을 결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여유가 많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느릿하게 걷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나에게 대학생들 같아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다가왔다. 남자는 말이 없었고 한발 물러나 있었는데 반해 여자는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설문 요청을 했다. 기껏해야 우리보다 두어 살 많아 보이는 여자는 얼굴이 피곤해보였지만 눈빛이 반짝였다. 독도인식에 관한 설문조사였는데, 나는 친구들을 따라 설문에 응했고 이름, 종교, 전화번호 등을 썼다. 내 종교가 기독교인 것을 본 여자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모태신앙이냐? 학교 공부하느라 신앙에는 소홀하지 않았느냐? 등등을 물어왔고 나는 진솔하게 대답했다.
“힘들었지만 힘든 가운데서 신앙이 더 자란 것 같아요.”
실제로 나는 고3 생활 내내 매일 성경 1독을 하며 하루를 보낼 힘을 얻었다. 모태 신앙이었지만 신앙은 나에게 간절함보다는 당연한 환경 같은 것이었고 중학교 때 교회에서 받았던 상처로 인해 교회생활을 즐기지는 않았었다. 교회에 있는 아이들은 내 눈에 거칠어보였고 교회수련회에서 껄끄러웠던 기억으로 나는 신앙은 있었지만 교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에게 신앙은 하나님과 1:1 관계 같은 것이었다. 진보적 의식 또한 강했던 나는 독도관련 설문조사라고 했던 것에 이미 마음을 연 상태였다. 나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언니의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큰 눈을 반짝이며 반가움과 뭔지 모를 애틋함까지 담아 이야기를 하는 언니에게,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나는 금방 마음을 열었다. 그때의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은 나보다 인생에 대한 연륜이 있겠거니, 뭔가 더 많이 알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대학생들은 그만큼 커보였다. 언니는 기도제목을 공유하자며 연락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형제가 남동생밖에 없어서 살갑게 다가오는 윗사람에게 마음이 열렸던 나는 그러자고 했다.
며칠 후 언니에게 자연스럽게 문자가 왔다. 처음에는 그냥 몇 번 하고 말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문자는 계속 이어졌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언니와 문자를 했다. 친구들도 생전 그런 적이 없던 애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의아한 눈치들이었다. 나는 내 인생에 불어오는 변화가 싫지 않았고, 대학생인 언니란 존재와 새롭게 형성되는 관계가 재미있었고, 곧 하게 될 대학생활에 대한 예행연습이라 여겼다.
처음에 기도제목 이야기만 하던 언니는 화제를 큐티 쪽으로 옮겼다.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장소는 시내 구석에 있는 어느 건물 안 룸식으로 되어 있는 카페에서였다. 그 곳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쿵 하고 울려서 깜짝 놀랐다. 언니는 여전히 살가웠고 따뜻했다. 그때부터 언니와 나의 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 성경을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는 식이 아니라 발췌해 나가는 방식은 독특했다. 언니가 말하고 써내려가는 문장들에 성경구절이 여러 개씩 근거로 따라붙으니 의심이 들지는 않았다. 교회생활에 열심이고 신앙 우위가 있는 언니였으니 더욱 그러했다. 몇 번의 만남 이후에 언니가 새로운 언니를 소개해줬다. 이제부터 처음 만난 언니를 J언니, 두 번째 만난 언니를 H언니라고 부르겠다. J언니는 나보다 두 살이 많았고 H언니는 한 살이 많았다. H언니는 J언니를 신뢰하며 같이 공부하고 싶어서 함께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바뀐 상황이 얼떨떨하긴 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은 성경공부 이외에도 밥도 먹고, 같이 놀기도 했다. 나는 언니들이 동생처럼 챙겨주는 것에 정을 많이 느꼈다.
성경공부는 예상 외로 오래 지속되었다. 만남횟수도 내가 쉽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잦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 꼴이었다. 나는 수능 이후 내가 짜놓았던 계획이 수틀리고 있음을 느꼈다. 공부하던 중간에 예전 과외 선생님을 만나러 갑자기 서울로 간 적도 있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서 과외 선생님을 만나고 난생처음 뮤지컬을 관람하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요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과외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에 나는 칭찬 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요새 큐티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외 선생님의 반응이 떨떠름했다. 공부를 막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칭찬을 받은 것도 아니어서 나는 그때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과외 선생님에게 J언니를 소개해준다는 둥 장난을 쳤던 기억도 있다.
서울에 다녀오고 나서 나는 다시 J언니를 만났다. 항상 가는 카페 예약이 다 찼다며 언니는 지인의 빈 가정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때 느낀 어색함, 뒤늦게 들어온 H언니, 두 언니와 나눠먹은 과자들, 따뜻한 분위기, 돌아갈 때의 골목길 풍경……. 나는 지금도 그 장면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큐티를 시작할 즈음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엄마와 매우 친밀했기에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다 나누는 편이었다. 엄마는 웬일인지 언니를 만나도 성경공부는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얘기 그대로 언니에게 전했고 언니는 거꾸로 엄마한테 성경공부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때부터 나의 기나긴, 비밀스런 삶이 시작된다. 나는 언니를 만나서 공부를 해도 놀러 간다고 하면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언니도 너무 좋고 공부도 재미있는데, 엄마가 너무 답답하게 군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었던 J언니가 소속 학교인 H대에서 행정보조로 알바를 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타임으로 근무해야하는 일이었기에 시간이 널널한 내가 H대로 와주기를 원했다. 지하철의 거의 맨 끝 정류장까지 타고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했다. 집순이였던 내가 정기적인 모임을 위해 그렇게 멀리까지 간 일은 처음이었다. H언니도 같이 왔고 J언니는 시간을 내어 빈 강의실에서 성경공부를 주도했다. 모임이 끝나고 J언니가 안쓰러워서 사무실까지 바래다주는데 마침 직원이 나와 있다가 언니에게 한소리를 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시간을 내기 위해 몰래 나온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엄마 때문에 저녁시간은 부담스러워해서 그랬던 것 아니었나 싶다.
H언니와 같이 버스를 타고 돌아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맨 뒷자리에 앉았고 승객이 거의 없는 오후의 한가한 버스 안이 나는 좋았다. 언니는 요새 마술을 배우고 있다며 간단한 마술을 보여주었다. 나는 감탄하면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미 H언니도 편안하게 느끼고 있었다.
H대에서 몇 번 모임을 하고, 카페에서도 하고 그렇게 언니들과 점점 더 친해졌다. 그동안 나는 방학을 했고, 다시 개학을 했다. 개학한 후에는 교복을 입고 H대로 가서 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그 날 교복자락을 휘감던 바람의 감촉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공부내용이 흥미로웠고 맞는 얘기라고 생각하며 듣긴 했지만 나는 신앙심이 그다지 불타오르는 편은 아니었기에 이론수업처럼 들었던 것 같다. 성경이야기인데도 교회에 비판적인 이야기들이, 제대로 된 신앙을 하고자 애쓰는 노력처럼 느껴졌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맹목적인 경향이 있는 기독교였는데 언니가 가르치는 이론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J언니는 두세 사람 있는 곳에 항상 함께하신다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나는 어느새 성경모임 스케줄에 익숙해져갔다.
수능성적표가 나오기 전날 나는 J언니에게 문자를 했다.
이제 좋은 시절 다 끝났어…….
아니야. 이제 시작이지~^^
나는 언니에게 심적으로 의지를 많이 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하듯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도 많이 했다. 나는 부모님과 상의 끝에 K대, M대, G대에 원서를 넣었다. 2월 달에는 면접 준비하랴 성경 공부하랴 바쁜 날들을 보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시간은 총알같이 흘렀다.
G대에서 마지막 면접을 봤다. G대는 불교 학교였고 전교생 기숙사제였다. 나는 성경공부를 하면서 신앙심이 자란 상태였으므로 학교 곳곳에 풍기는 불교적 분위기가 거슬렸다. 이미 다른 학교에서 합격통보를 받은 후였으므로 면접도 편하게 보고 나왔다. 얼마 후 G대에서도 합격통보가 날아왔다.
J언니와 H언니와 공부를 하고 지하철 안에서 대학 이야기를 했다. 나는 불교학교인 G대에서 24시간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며 K대와 M대 중에 고민이라고 했다. K대가 네임밸류가 더 있었지만 M대는 4년 장학생으로 합격을 한 상태였다. 언니들은 내가 G대를 안 간다는 얘기에 내심 안도하는 것 같았다. 그 날. 지하철의 덜컹거리는 느낌과 두 언니와 웃고 떠들던 기억. 나에게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K대로 마음을 정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 K대는 인근도시에 있었기에, J언니는 나에게 통학을 하느냐고 물었다. 집순이였던 나는 그럴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결정에는 J언니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기계처럼 공부하며 보냈던 곳을 떠나는 기분은 섭섭하기보다 홀가분했다. 밀가루를 뿌리며 도망 다니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나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마감했다.
[출처] 경험담: 7년의 기록(1) (바로알자 신천지) |작성자 새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