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이 자리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하러 나온 박지♡입니다.
신천지 생활로는 2014년 6월 말 복음방을 시작으로 2015년 12월까지 일년 반의 시간을 서울야고보지파 서울교회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를 따라 걸음마를 띌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교인으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다닌 교회는 저에게 일요일만 되면 가야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습관처럼 혹은 가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까봐 갔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의 존재에 항상 의문을 품었고, 어제는 창조론을 믿었다가 오늘은 진화론을 믿는 그런 믿음생활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뭔가… 신념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 시간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기도라기보단 따지는 말같지만… ‘믿게 해 주시려면 확실히 믿게 해주시거나 아니면 확실하게 저버리게 해 주세요.’
고3 수험생활을 끝내고 저는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재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크게 느껴져서 스무 살이 된 후로는 교회를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재수생활을 보내고 스물 한 살 대학에 입학한 후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가더라도 교회를 가라는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과제를 핑계로 일요일이 되기 전에 다시 자취방으로 올라오곤 했습니다. 엄마는 자취방근처 교회를 알아보고 다녀라 하셨지만 저는 굳이 그렇고 싶지 않아서 “알겠어. 알겠어.”하면서 그 말을 넘겨버렸습니다.
그렇게 1학년을 보내고 있던 중 저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하♡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심리학과인 하♡이는 어떤 학회활동에서 알게 된 서울대학원 심리학과 선배가 연구를 하는데 표본들을 모집하는 중이라며 인터뷰를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고, 뭔가 ‘아… 이런게 대학생활이구나’싶은 마음이 들어 흔쾌히 하기로 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애니어그램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다음만남을 잡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기독심리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네. 복음방을 시작한거죠. 교회를 가지 않아도 마음이 편한 무신론자 무교인이 되고 싶었지만, 교회를 다니다 가지 않아서 생기는 이 불편한 마음에 ‘차라리 확실하게 믿자. 예전에 했던 그 기도를 이렇게 이루어주시나보다.’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성경공부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새롭고 꿀과 같이 달았습니다. 교사를 만나는 시간은 즐거웠고 흔들리는 갈대같던 제 믿음이 확실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과정 중에 한 가지 생각이 나는 것은 ‘재림’에 대해서 배웠던 그 날, 자는 도중 예수님이 재림하실것만 같아서 심장이 너무 쿵쾅대 잠을 자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아직 천국을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조금만 더 늦게 와 주세요. 저는 아직 천국에 갈 자격이 되지 못해요. 등과 기름을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해요…’
교사에게 교회를 가고싶다고 했더니 제 자취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장로교회를 추천해주었습니다. 저는 강요하지 않아도 수요일과 주일 혼자서라도 꼬박꼬박 나갔습니다. 열심히 필기도 하고 집에 가서 묵상도 잊지 않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위장교회였지만요.
그렇게 3개월이 조금 넘는 복음방 후에 센터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센터로 가서 앞자리 가운데에서 열심히 강의를 들었습니다. 한 번도 졸지 않고 핸드폰은 항상 비행기모드로 해놓고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센터 수강 중 이었지만 잎사귀 역할도 하고, 연극을 하면 시나리오를 쓰고 주인공 역할을 하고, 행사가 있으면 레크레이션 mc를 하기도 하고, 유월예배에선 찬양인도도 하며 그렇게 전 점점 신천지인이 되어갔습니다.
그렇게 신천지인으로 활동을 하던중 작년 10월 중순이었습니다. 어머니께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말을 빙빙 돌리다가 ‘너 혹시 신천지니?’하는 물음에 전 무조건 잡아 뗐습니다. 전화를 끊고서 바로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들켰던 자료도 없었고 의심도 없었는데 그런 전화가 온 이유는 딱 한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도자인 하♡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알고보니 하♡이와 하♡이의 인도자인 예♡자매가 실종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이가 신천지에서 말하는 강제개종이 된 것이죠. 그래서 저를 제보한거구요. 신천지에서 말한 강제개종교육이라는 것에 혹시 제가 끌려가지는 않을까 너무 무서워서 그 길로 바로 하숙집을 뛰쳐나왔습니다. 심지어 속옷도 입지 않고 급하게 겉옷을 걸치고 나왔습니다.
교사는 저를 데리러 왔고, 성전사무실에서 청년회장, 담당팀장, 전도사, 교사, 구역장이 긴급소집되어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목양실에서 지파장에게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청년회장은 저에게 그동안 갈고 닦은 무에타이실력을 뽐낼 시간이라며 (죄송합니다) 신현욱의 코뼈를 부러뜨리라는 피드백을 했습니다. 그럼 저는 신천지의 영웅이 될 것이라고 제게 기대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위치추적기를 받았습니다. 저는 언제 끌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지만 이 시기를 어떻게든 버티고자 했습니다. 지파에 어디로든지 도망을 갈 수 있는 곳을 알아봐달라고 했습니다. 해외신천지 소식을 듣고 그 쪽으로 알아보았습니다.
부모님께서, 특히 엄마는 저에게 믿음이 심하게 강하셨고 평소에 의지를 많이 하셨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가 신천지인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전화를 하신 목사님에게 되려 화를 내시고 “우리 지원이는 신천지인이 아닙니다. 천 프로 장담합니다.” 라고 말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시간을 벌 수가 있었습니다. 우선 부모님이 모르는 장소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했습니다. 하숙집의 주소는 부모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언제든지 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길로 위장교회관리, 지파 여자축구, 위장동아리관리, 부구역장, 센터관리의 모든 사명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동안 갈고 닦은 뛰어난 모략 연기력으로 부모님께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을 좀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며 용돈을 받아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여행은 무슨…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까? 매일 항공권을 검색하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삶이 너무 피폐해지더군요. 배낭을 하나 매고 목적은 하나 신천지, 이 신앙을 지키자. 용인, 평택, 파주, 대전, 대구, 부산, 공주, 군산, 전주, 강변역, 서울역과 중계 성전을 오가며 찜질방, 모텔, 게스트하우스, 친구 자취방 등을 전전하며 부모님이 절.대. 알 수 없는 곳으로 피신을 다녔습니다.
덕분에 전국을 돌며 각 지파의 성전을 순회하고 은혜를 받았죠. (웃음) 시도때도 없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정예♡자매가 개종되지 않게 해주세요. 하♡이가 다시 신천지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하♡이가 제보한 안소♡자매가 개종되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저 진짜 이 신앙 지키려고 노력하는거 알아주세요... 신인합일 될 때 서울야고보 1만2000중에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그러던 11월 중순에 예배 광고시간이었는데 스크린에 안소♡자매가 개종이 되어 제명이 되었다는 소식이 떴습니다. 정말 절망 중 절망었습니다. 더 이상 어떠한 소식을 물어볼 곳도 없고 답도 안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떠돌아다닐수는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네가 학교를 다니지도 않는데 더 이상 하숙집에 월세를 내주기가 힘들다며 방을 뺐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몸에 항상 위치추적기를 지니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집에 온 후로 1개월 반 정도를 정말 아~ 무 탈 없이 보내고 있었습니다. 생각했습니다. ‘아, 하나님이 부모님의 눈과 귀를 가리워주셨구나’라고 착각을 하고, 그나마 가까운 상봉센터 12월 개강에 관리를 들어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어디를 가자, 신년에 해돋이를 보러가자“라는 말에, 없는 스터디와 독서모임, 동아리 등을 만들어 시간이 나지 않는다 했습니다. 부모님의 차는 절대 타지 않았고, 외식 또한 절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족간의 화목과 돈독함을 어느 정도 해놓고 서울로 다시 올라가던지 해야겠다싶어서 평소에 좋아하던 가수 아이유의 콘서트를 제안했습니다. 이게 왠걸! 한 사람당 티켓값이 10만원이나 하는 콘서트에 흔쾌히 ”난생 처음 이제 문화생활도 좀 즐겨봐야겠다“며 냉큼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 의심도 없이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2월 30일 신천지에서 정오 수요예배를 마치고, 부구역장에게 잘 다녀오겠다며 반갑게 작별인사를 하고, 너무 흰티를 입고 있는 저에게 신천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니트조끼를 하나 사 입고, 콘서트장으로 갔습니다. 우리 가족은 정말 화목하고 즐겁게 아이유 콘서트를 보고서 차에 아빠, 엄마, 오빠, 저 이렇게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가 어디에 있는지 보고를 하려고 했는데, 차문 유리창에 비추어 내용이 보일 것만 같아서 집에 도착하면 연락을 하자 싶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다 도착했다고 생각했을 때 쯤 아버지는 소변이 마렵다면서 어두운 한 상가 앞에 차를 대고 내리셨습니다. 그 후에 저는 옆에 준비되어있던 차량으로 옮겨져 제3의 장소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장소로 가서, 처음 며칠은 난리 난리를 치다가 컨셉을 바꿨습니다. 조용히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안심을 할 수 있게끔 말입니다. 일주일쯤 되는날에 제가 불쌍해 보였는지 방을 청소해주겠다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버지의 부성애를 틈타 순식간에 부모님을 방안에 가두고 탈출을 했습니다. 머릿속으로 계산한대로 척척 맞아떨어졌습니다. 무슨 말을 할지도 이미 며칠 전부터 계산해놓았기 때문에 택시를 잡아서 ‘서울 중계동 하라프라자로 가주세요’를 하겠다며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전방 20m를 가지못해 전속력으로 뛰다가 그대로 추운 겨울 빙판을 밟고 뒤로 나자빠지게 되었습니다. 숨도 못쉴 만큼,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크게 다쳤습니다. 눕혀진 상태로 하늘을 보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속으로 울부짖었습니다. 4달이 지난 지금도 꼬리뼈부터 등까지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영광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이대로 마비가 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일어나지도 제대로 눕지도 앉지도 걷지도 못했습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진통제를 한 알, 두 알 먹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도망은 불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싸워서 이겨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신천지에서 말하는 강제개종교육에 동의서를 쓰게되었습니다. 처음 본 영상은 새빛교회 신천지 개혁 영상이였습니다. 신목사님이 그 안에 있을 당시 하신 말씀이었는데, 그 영상 속에서 10초 남짓 짜집기 영상을 보았었기 때문에 신천지에서 어떤 식으로 성도들에게 보여주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영상의 전체를 보고 ”신천지에서 무언가 숨기고 있다…라는 생각과 왜곡을 한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난 절대 신천지를 배신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저는 알아서 잘도 선악과를 찾아 먹었습니다. 동영상들은 정말 너무 달고 맛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신천지와 다른 면을 보는 것은 흥미롭고 눈과 귀를 1초도 떼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 중 제게 가장 큰 충격이었던 것은 신천지에서 예배시간에 지파교육부장이 UBM영상의 일부분을 잘라서 보여주며 계시록 20장 11절의 반증교육을 했었는데 그 영상의 전체를 보니 신천지의 거짓말이 너무나도 확실하게 들통 났습니다.
정말 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걸 알고 히브리서 8, 9, 10장의 새언약의 참 뜻을 알게 되니 너무 허무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새언약을 지키겠다고...마음판에 새겨야한다고 열심히 외우고 일하고 전도했는데... 목숨을 걸었었는데 다 가짜였다니...내 생명의 가치가 이정도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처음 온 날 왼편의 ‘한 영혼을 더. 한 사람을 더. 한 생명을 더.’ 라고 써 있는 플래카드를 보고 오열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천지에서 한 영혼을 더 살리겠다고 그렇게 찾기를 하고 피드백을 했는데… 진짜 영혼을 구하는 일이 그게 아니였구나… 그럼 하나님의 진짜 뜻은 뭘까?
하나님은 후속교육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아, 믿음을 주기 위해 순탄한 길로 가게 하지 않으셨구나...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가 않았는데 지금 이렇게 주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주셨구나... 구원의 확신을 이렇게 갖게 해주시구나.
제 자신이 신기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찬양을 부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진심이라서 신기합니다.
신천지를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알았을까? 예수님의 십자가지심의 의미를 얼마나 알았을까? 아니, 신앙을 하긴 했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그래서 저를 신천지로 보낸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결국 이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 주께서 제게 계획하신 것에 대해서도 기대가 됩니다.
결론을 아니까 담대해지네요. 결국 우리는 주님께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과정속에서 모든 아픔, 어려움, 힘듦 다 내려놓고 주께 맡기고 가는거라 생각합니다. 주님 다시오실 때까지 옆에있는 우리 지체들 다시는 잃어 버리지 않고 서로 사랑하고 보살펴주며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