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천지 시몬지파 상암지역에서 약 1년반 동안 일했던 이호♡입니다.
사실 나오게 된지는 5개월이 넘은 165일이 되었지만 간증에 대해서 마음의 어려움이 있어 양해를 구해 미루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분들께서는 이단 신천지에 대한 실상들을 많이들 알고 계신데 왜 제가 이 간증을 해야 하는지, 간증이 뭔지, 간증을 함으로써 제가 무엇을 깨닫게 될지 모든 것이 다 조심스럽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그곳에서의 일들을 자꾸만 미화시키려 하는 습관이 버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굳이 간증을 하지 않더라도 제 길지 않은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 했던 사건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었기에 간증문 작성을 겨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잘 믿었는지 믿음이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3학년때 한 집사님의 노방전도로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 집안은 신앙인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부모님은 교회를 꺼려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곧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2학년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에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고 아버지를 제외한 저와 남동생을 전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어머니의 기적적인 간증을 듣고 교회를 다녔기에 믿음이 적었습니다.
고등학교 2년은 수험공부를 이유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비록 믿음이 부족했다고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에 기대와는 다른 대학생활에 하나님 곁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평안했던 학창 시절이 그리워져 대학교에서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커져서 그런지 지식적으로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 신앙에 문제가 생겼고 이전보다 갈수록 힘들어만 갔습니다. 여러 가지 힘든 일이 겹치다가 결국 고등학교 친구와 방황을 하기 시작했고 학교 성적마저 바닥을 쳤습니다. 그때 홍대에서 20대의 삶이라는 주제의 흥미로운 세미나를 알게 되었고 2차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영등포 교회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이후의 만남을 잡고 있던 중 또 한번의 영화제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2차 인터뷰를 거쳐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암지역 특전대 대원이었던 자칭 상담사의 빠른 진행으로 저는 스무 살 되던 해 8월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바빠지며 영등포 교회 사람과의 만남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센터 생활 초기에는 항상 졸다가 보강하고 집에 간 것 같습니다. 그러다 3개월이 지나고 신천지 오픈을 하고 난 후부터 저는 기수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었고 그때부터 저는 매일 기도했습니다. 어머니가 기도하지 않게 해달라고..엄마한테 제가 신천지에 다니는 것을 사단이 알려주도록 허락하지 마시라고 하나님께 부탁 드렸습니다. 열심히 수업을 듣기 시작한 후부터 저는 그 곳에서 흔히 말하는 사단의 방해를 많이도 겪었습니다.
신천지 오픈과 동시에 충분했던 용돈이 부족해 교통비가 없어 울면서 집을 뒤지기도 했고 신천지 교회를 가는 길에 계단에서 떨어져 인대가 찢어졌지만 지각하기 싫어서 부은 다리로 병원도 가지 않고 센터로 1시간 반 거리를 가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열이나 쓰러지는 바람에 센터수강을 못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 날이 6개월 수강 중 단 한번의 결석이었습니다. 사람이 교리로 만든 믿음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이 다른지 그때는 몰랐기에 미친 듯이 수강했고 고등 때는 수업 때마다 은혜라도 받은 듯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저의 기도제목은 스케줄러에도 항상 써놨었는데 ‘내가 무엇인가 잘 못 알고 있을지라도 내가 가는 이 길의 끝에는 결국 참 하나님이 계시기를, 교만해져서 하나님처럼 행동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저는 1년간의 제 기도에 대한 응답을 이제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료 후에는 더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기억도 안 날만큼 많아서 다 말하지 못하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저는 단지 그 상황을 벗어나 신천지로 가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했던 거짓말들이 부모님의 가슴에는 확실하게 새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수님의 부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해야 한다고 할머니할아버지와 아버지 가족의 모든 분들이 대형버스를 대절해 가는 여행에 빠지고 전도 세미나를 열매와 함께 갔고, 외갓집 식구들과 다같이 갔던 태안 여행에서 대전의 친구와 만난다는 거짓말로 맛디아 지파 대전지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학교 과제가 많다는 거짓말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가족끼리 저녁을 먹자고 간절히 부탁하시는 부모님의 말씀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물론 외박은 밥 먹듯이 했고 저의 평균 등교시간은 새벽 5시, 귀가시간은 새벽 1시에서 2시였습니다. 한 번은 명절에 송구영신예배가 가고 싶어서 설사약을 5개 먹고 타이레놀을 2개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제가 너무도 부모님에게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픈 채로 시골에 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이렇게 무너뜨리는 동안 저는 신천지에서 단기간에 구역장의 자리로 올라갔고 동시에 상암지역 기드온 용사라는 전도결사대 에서 새 신자 팀장과 팀장서기와 전도서기, 2명의 복음방 교사와 한 명의 잎사귀까지 총 6개의 직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2시간 반 학교에서 또 센터까지의 거리가 1시간 반, 센터 수강 후 집까지 거리가 1시간 반 도합 하루에 5시간 반을 지하철과 버스에서 생활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다녔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실 전 초대교회까지 대중교통으로 2시간 반이 걸리는데 그다지 엄청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몇 년 전 어머니께서 신천지 교육을 6개월정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을 안 후로는 정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나 엄마가 성령 거역 죄로 구원을 못 받는 것은 아닐까 매일 기도하고 새벽6시 기도회를 다녔습니다. 늦잠으로 못 가더라도 6시에 단체 톡방에 기도제목을 올리고 방에서 홀로 기도했습니다. 저는 직분과 상관없이 전도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주일 내내 2시부터 6시 또는 2시부터 밤 12시까지 홍대와 신촌에서 노방 전도를 뛰었습니다. 때문에 집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밥 먹으면서 직분을 감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삼각김밥으로 저녁만 먹으면서 뛰다 보니 7kg이 금방 빠지더군요. 신천지 나오니 다시 쪘는데 딱하나 좋았던 것 마저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참 속상합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진작 했다면 좋았을 것을 저는 사단의 종 노릇을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스무 살 방황하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를 전도했고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에 올라와 좋은 직장을 다니던 스무 살 꿈이 있는 민♡이를 전도하며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스무 살 또 다른 친구를 전도했고..저 때문에 너무나 많은 영혼이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행인지 신천지에서 저의 구역원이던 친구들 중 예♡이를 포함한 대다수 친구들이 나온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정말 사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인데 구역원들이 많이 나오게 되어 꼭 제가 은혜를 받은 것 같이 감사합니다.
저는 또 다른 구역원이었던 하♡이의 제보로 반증 교육을 듣게 되었는데 저는 처음부터 집을 나갈 생각은 없었고 끝까지 싸워 승리하던지 순교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를 아시는지 저희 부모님은 저를 많이 어색해 했고 미숙한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방안에 주소가 쓰인 물건도 보이고 했거든요. 펜션 안에서 맞게 된 제 생일에는 하♡이 아버님께서 케이크를 사다 주셨는데 저는 생일 선물로 부모님께 회심교육 동의서를 작성해 드렸습니다. 방안의 분위기는 장난도 치고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속으로 기도하고 신천지에서 거짓말과 전도를 열심히 하던 실력으로 부모님이 서로 마찰을 빚게 하기도 하고, 죄를 많이 졌습니다.
간사님께서는 친절하셨습니다. 어차피 저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냥 시간 때우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제가 특별히 눈물연기 라던지 그런 것을 한 건 아니지만 신천지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친구를 제보하면서 펜션에서 나오게 되었고 그날 바로 민♡이의 자취방에 찾아가 신천지 오픈을 하고 짐을 싸서 저희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후속교육을 들으며 민♡이는 무신앙이었던 터라 시간이 갈수록 혼란스러워했고 단지 저를 따라 시작한 성경공부가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낯선 인천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6개월 넘게 하던 알바도 그만 두게 된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민♡이는 겨우 저랑 알게 된지 8개월 되었던 언니인데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4개월간 후속교육을 듣는 동안 꾀부리거나 저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 한 번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가 자책할 때 원망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언니 덕에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다고 해줬습니다. 민♡이를 데리고 나왔을 때 그저 펜션에서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서 계획한 것도 있어서 민♡이와 신천지에 재 반증 교육을 들으러 갈 계획을 하기도 하고, 부모님 몰래 지파장과 통화를 하거나 그쪽 사람들과 카톡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해외여행을 보내주신대서 신천지 쪽에서 해외 개척지를 알려주기도 하며 해외여행을 피드백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러한 더러운 마음은 후속교육을 이해하지 못해 하나님을 믿기 힘들어하는 민♡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제가 먼저 후속교육을 열심히 듣기 시작한 것부터 점차 깨끗해졌고 후에는 민♡이의 믿음을 위해서라도 또 신천지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내 자신의 신앙을 확신하기 위해서라도 이 후속교육을 제대로 끝까지는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특별히 깨지거나 틀린 것을 발견한 게 아니라 이미 틀린 것을 그제서야 이해하게 된 것일 뿐이었습니다.
수년간 수많은 체험과 환상을 겪고도 신앙의 나태가 찾아온 어머니, 어머니의 그 수많은 간증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지 않던 아버지께서 지금 이렇게 선한 의지로 신앙을 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희 가정의 길의 끝에 하나님이 계셨으면 하는 제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회복 후 민♡이는 취직을 했지만 최근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고 예배도 나오지 못해 다시 교회를 나올 수 있도록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하나님을 찾고 붙잡고 싶어서 저에게 교회가 오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가족들 모두 무신앙이라 민♡이의 신앙은 용기가 많이 필요한데 당당하게 친구들과 가족에게 교회를 다니겠다 말한 민♡이의 예쁜 마음을 위해 기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후속 교육 이후 신천지에 남은 또 다른 열매들이 너무 오래도록 사단의 손에 잡혀있지 않도록 이단 상담사 강좌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저의 신앙에 어려움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신천지에서부터 변함없이 지켜온 기도제목만은 앞으로도 잊지 않을 생각입니다. 진리가 있는 구리초대교회에 더 많은 사랑이 모여서 많은 열매들을 맺고 귀한 영혼들을 무사히 데려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