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나님 앞에 저의 경험담을 올리게 되어 감사를 올립니다.
저는 2003년 어머니의 소천으로 인하여 그곳에서(장례식장) 저희 가정에 제일 맏아들인 오빠의 아내로 부터 신천지에 미혹되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하나님의 진리된 말씀 앞으로 인도되는줄 알고 있었지요.
저희 큰 오빠 가족은 독일에서 살고 있었고, 어머니의 상 치루는 일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 올케를 만날 수 없었으리라 생각도 해 봅니다.
전 그당시 제가 벌려놓은 사업장의 실패로 말미암아, 무척 실망하고 실의에 차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가정의 절반은 무교 상태였고
아버지께선 무교, 어머니께서는 독일 오빠네에 몇년 가 계셨을때 세례를 받으셨다 했습니다.
(올케가 독일에서 신학을 했고 전도사 사역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부친 숙부 두분께서는 목사님이셨는데 북한 복음 전파하시려 가셨다가 순교하셨다고 하십니다. 함께 갔었다고 한 고모님께선 혼자 간신히 남한 탈출에 성공하셨다 합니다.
5남 3녀중 7째이고 셋째딸인 전 무척 가족에게 근심과 걱정을 주었던게 아닌가 생각할 때 회개와 함께 후회가 밀려옵니다.
제 위로 약 40년 전도사로 사역한 언니의 강력한 기도의 힘이 저를 오늘 이렇게 하나님께로 회복된 모습으로 나아올 수 도 있었겠다 싶네요.
어머니의 삼우제가 끝나고 올케는 무슨일인지 가족들과 출국하지 않고 저와 함께 서울을 향해 오는 중에 제가 왜 가족들과 같이 출국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천안에 그동안 독일에서 알고 지내던 목사 한분과 천안 어디에 기도원을 개축중에 있으므로 그 일로 인해 서울에 잠정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날때 올케가 거주하고 있다는 화정엘 들리겠노라 약속했고 그때가 1월이었습니다.
2월에 몇번 올케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고 (그때 전 이미 섭외 대상이었겠지요)
때마침 저의 건강문제로 제가 파산이후 친구언니의 가게에 관리를 맡고 있었는데 좀 쉬어야 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아 언니(올케)의 권유대로 올케의 거처에서 몸을 쉬기로 하고 몇번 화정 전도사와의 만남이후에 화정센타 (그 당시엔 화정신학원-도마지파) 성경공부에 몰입하기 시작하였고 전 저의 현실에서의 고통을 잊고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전 30대에 1~2년 신앙을 제외하고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강한 어떤 힘에 이끌리는 몽롱한 의식가운데 말입니다.
(그것이 사단의 미혹이 시작된 것이었나 봅니다)
성경에 무지했던 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교리와 의문투성이에 깨닫지 못했고 그래도 정말 열심히 적응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고 의문이 드는게 많았어도 제 자신이 성경에 무지한 탓이라 여겼고 순종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믿었고 사역을 한 올케는 이 말씀에 저렇게 순종하고 있는데 나 자신이 뭐 아는게 있다고 태클을 걸겠냐는 생각이 강하게 제 마음에 지배했습니다.
그렇게 집중하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서 3수강을 했지만 1수강 중등이 지나서(현 시몬지파) 도마지파 한솔빌딩 예배장소에 유월했고 6개월후 구역장 직책을 맡았고 특전대와 합류, 전도(노방, 가가호호라 하나요?) 그것도 해봤씁니다.
복음방을 전전했고 시간은 쉼없이 흘러 2년간 화정에서의 신앙을 접고 저의 직장이 정해져 서울로 거주지가 옮겨지면서 과천 요한지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005년으로 기억됩니다)
과천에 출석하여 다니는 동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 갔습니다.
제가 직장인이 되었기 때문에 전일 그곳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만희 교주가 직장인들에게는 직책(구역장)을 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대신 교육, 모임, 예배참석등은 변함없이 잘 해 나가고 있었지요.
늘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전도에 전념하면서 열매 맺는 것에 모든 시간을 바칠 수 있을까를 고뇌하는 가운데,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는 고민거리가 생긴거지요.
그래도 앞만 보며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서 과천의 생활도 어언 7년이라는 세월을 치닫고 있을 즈음,
2012년 하늘문화체전으로 인하여 카드섹션 연습을 약 몇개월에 걸쳐 온 몸을 혹사해 오는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체전날 모든 메뉴얼이 진행되고 마지막을 치닫고 있는데,
교주 이만희씨와 압구정 김남희 원장과의 황당무괘한 결혼식같은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전 과천요한지파 압구정지역 지역원이었으므로 자주 그 두사람을 자연스럽게 볼 기회가 많았지요.
지역모임때 언제부턴가 교주가 자주 센터에 등장했었고 왠지 압구정센터에 중점을 두는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뭔지 모르게 원장의 행동거지들이 석연치 않고 말투가 몹시 당황스럽고 일일히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반감을 느끼게 하는 일들이 잦았습니다.
그것도 일순간으로 넘기고 또 다른쪽으로 돌리고 때로는 구역장을 통하여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때마다 설득당한 셈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저의 생각들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는듯이 전 돌연 하늘이 캄캄하며 가슴이 쿵쾅거리며 이건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체전이 마무리 되는지, 제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비를 맞으면서도 교통혼잡으로 인해 차는 탈수조차 없었고 반쯤은 걸어서 생각을 수습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의문투성이였던 모든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고, 한가지 한가지 퍼즐을 맞춰가기 시작했지만 도무지 알수 없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이튿날 출근도중 결국 전 의식을 잃은채 3일간의 병원신세를 져야했고, 구역장에게 보고를 했고 병원을 오겠다는 구역장을 만류하고 수요예배를 가지 않은 상태에 퇴원했습니다.
몸을 가누고 정신을 차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일 예배를 갔는데 그동안 내내 거룩하고 참되다는 것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문 드문 들리는 말에 체전으로 인해 잘못된 만남행사로 실족한 신도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주는 또 거짓말로 연기를 했고, 만남행사를 담당했던 국제부를 호통치기 시작했고 또 내부단속하기에 바빳던 거라고..
이젠 다 알고 있습니다. 은폐되고 감추어져 있었던 이리의 발톱!
전 마음이 급해졌고 의구심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2012.9.16 체전이후 추석명절이다 머다 부산했고 저의 건강상태도 몹시 좋지 않아 몸과 마음을 추스려야 했기에 한주가 지난후 압구정센터에서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00 전도사와 만나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전도사는 압구정 전도사로 들어가기전 참빛교회가 분산되고 난후 과천으로 와서 저와 한 구역안에서 대면했었고, 서로 신뢰하는 사이였습니다.
흔쾌히 만남을 허락했고 약속장소에서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제가 뜬금없이 총회장님 지금 누구와 살고 있는지 알고 있지요? 내게 숨김없이 얘기 해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한 전도사는 시인했고 자신도 압구정 사명자들 모두 봉고차로 영문도 모른채 가게 되었는데 아방궁같은 2층 건물인 집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평소 너무 타이트한 활동으로 갈때에는 피곤하여 차안에서 잠이 들어 어느 지역인지는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만, 설악면이라는 것과 집안에 들어가니까 교주가 반바지에 런닝차림이었고 김남희 원장은 홀드레스 차림에 온 집안은 두 사람의 사진으로 도배를 했었는데 풍기는 뉘앙스가 예사롭지 않음을 감지하고 기분이 몹시 상했다고 했습니다.
엉뚱한 생각을 한참하다가 얼굴을 씻으러 화장실을 갔다오니 일행들이 없어서 찾다가 이층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혼비백산한 원장이 두팔로 가로막아 놀라서 밖으로 나왔다고... 그래서 자신은 센타로 돌아온 이후 모든 카톡과 마플등 연락을 차단하고 센터활동을 접겠다고 했다는 것이 거짓말 같이 들리지 않았고, 저와 얘기하는 그 얼굴에 공포와 실망과 갈등이 뒤섞여 복잡한 표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외 다른 이야기도 많았으나, 제게 가장 중요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두사람의 불륜관계일지도 모르는 이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고 그렇게도 항상 의문스러고 의혹으로 점철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제 머리는 생각들로 터질듯 하였습니다.
도저희 혼자서는 해결날 것 같지도, 결론을 내지 못한 저는 저와 친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은근슬쩍 떠 보았지만 시간만 흘러가고 더 이상 어떤 결론이 나지 않았고 급기야 그 당시 얼굴을 많이 보고 지내던 한0숙집사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알리게 되었고 또 그 집사님에게서 더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 원장이 윤00교육장을 찾아가 자기가 총회장을 보필하려고 이혼을 했으니 협조해 달라고 했다는 사실..
- 신현욱 교육장님의 쿠데타사건
- 심00, 박00강사와 교주와의 관계설
- 이정0 지파장과 원장과 신현욱 교육장님과 심00 여신도와의 오고간 대화..등등
제가 감당키 어려운것들은 신천지가 악의 축인 종교사기집단이란걸 제가 10년동안 바보퉁이처럼 철저하게 속았다는것!
더 놀랄일도 슬퍼해야할 시간이 없었지요.
이 모든것을 아는 시간이 빨리도 지나치고 있었느니까요.
전 계속 한전도사님과 그의 남편과 만남을 갖으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고 신천지가 되어가는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저도 모른채 커지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한명0집사가 저에게 들은 모든 얘기들과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발설하고 다닌 관계로 그것들 전해들은 2명의 집사중 박00이라는 집사가 어느날 문제가 불거져서 급기야 제명처리, 윤00지파장 여동생은 근신을 당했다는 교회광고를 듣게되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한집사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얘기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제명당했다는 겁니다. 전 너무 어이가 없고 이 사실을 만약에 한 전도사가 안다면 나와의 모든 정보공유는 끝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전도사 부부는 차츰 저와의 시간을 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편되는 사람은 심지어 저에게 이만희는 사기꾼중의 사기꾼이며, 전도관 출신에 이단사이비교리를 끌어다가 신천지를 만든거라고 직절적으로 욕을 하곤 했던 사람이었는데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것은 바라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제가 얘기했던 사실들이 기독교 방송을 탔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전 결국 모든 진실을 안뒤 약 1년이란 시간을 허비하고 장기결석으로 돌입, 2013년 12월 과천교주 이만희, 지파장 유00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냈고 끔찍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모든 신천지와의 악연을 종결지었습니다.
악의 고리에 종지부를 찍고 손가락하나 조차도 움직일 수 없는 심신과 누구와도 대변하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차라리 이대로 모든 삶을 끝내어보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고통받고 있는중에,
인터넷 신천지대책전국연합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 카페에서 더 많은 충격적인 사실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정신을 수습하고 탈퇴한지 1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그냥 앉아서 고통을 감추고 살수는 없었습니다.
카페회원으로 정식 등업되었고 카페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2월 초대교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걸음을 인도하신이가 하나님이시란걸 저는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흑암의 세계에서 헤메이고 있을때 과연 어떠한 심정이었을까요?
얼마나 애통하셨을까요?
제 아픔보다 더하셨을까요?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품어주신 주님!
저는 지금부터 살아가는 제 삶의 시간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제 삶의 원동력이 되시는 주님
지금 저는 다시 품어주시는 주님안에서 죄의식과 과거로부터 떠나 새롭게 매일매일 주님을 만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모든 시간들, 삶들, 저 자신에게 맞추지 않을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주님 뜻하시는것에서 소망과 비전을 찾을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미련하고 우둔한 저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올려 드리고 싶습니다.
주의 뜻대로
겸손히 낮은 자세로 살아갈것을 주님앞에서 고백드리면서 무척 긴 저의 경험담을 마칩니다.
2015. 4. 4.
김 ♡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