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빌립지파 강릉지역에서 1년 반여년정도 신천지에 소속되어 있던 한*환입니다.
저희가족은 제가 고등학교1학년때까지 부모님과 여동생이였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어머니의 신앙심은 투철하셨습니다. 되게 제 성격처럼 조용한 가정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족간에도 많이 대화가 없었던거 같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2학년때 막내동생이 태어나면서 저희가정은 확 바꿨습니다. 기존 저희 가정과 정반대인 아이가 생기므로서 저희가정은 활기차고 웃음이 많아진 가정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집안에 경제력이 많이 안좋았습니다. 저도 대학이후부터는 알바광이라 할정도로 알바를 많이 하였고 그때부터 ‘아... 편한가정에서 살았으면.. 부자인가정에서 살았으면..’이라는 한탄도 했고 돈이 뭐길래.. 그놈의 돈은 저의 아킬레스건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토종 강릉사람으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강릉에서 지냈고 교회또한 한교회를 쭉 다녔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는 천막교회로 시작한 교회로서 현재는 40여명이 되는 작은 교회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어머니께서는 항상 말해주셨습니다. ‘넌 교회에서 1호 아이라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점점 크면서 그사랑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사춘기라는 과정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비교적 사춘기를 조용히 지나간 편이였고, 신앙적 사춘기도 찾아왔습니다.
매주 똑같은 주일 어린이예배부터 저녁예배까지 하루종일 교회에 있어야 한다는게 어느순간부터 시간 아깝고 왜 하루종일 있어야되지?라는 생각이 들며.. 우리교회는 왜 사람이 많이 없을까? 더큰교회에 가고 더많은사람들과 프로그램을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교회 다니면 착해야되고 나쁜짓도하면안되 라는것도 싫었습니다.
사춘기와 신앙적사춘기가 겹치면서 대학가면서 두얼굴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성실하고 좋은교회오빠로.. 교회밖에서는 세상애들 노는거처럼 놀며 즐겼습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하던 3학년 2학기때 신천지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당시 이단에 대해 거의 몰랐습니다. 평소 영어에 관심이 많아 어떤외국인들이 같이 회화도하고 같이 운동도 하자고 했을 때 흔쾌히 승낙을했습니다. 그래서 교회형들에게 자랑을 했더니 ‘야 그건 몰몬교! 이단이자나’라는 꾸지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단에 대해 잘몰랐고, 신천지에 대해도 잘모르고 있었습니다. 대학 3학년때 노방으로 알게된 자매는 거짓말처럼 공감대가 막???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전에도 다른자매에게 저의 정보가 있어서 그정보로 저를 간파해있던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만난후 qt같은 것을 제안했지만 저는 당시 실험실과 공부를 해야할것들이 많아서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난쯤 밥을 먹다가 우연으로 알게된 교사.. 그교사를 통해 저는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모태신앙이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무지함을 드러내더라구요. 저는 싫었지만 그 순간 욕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좀 배워서 지식좀 쌓고 애들에게도 가르치고 나도 좀 배워야겠다 라는 욕심이 들었고, 재밋고, 신기해서 들어보기로 했고,그로 인해 저는 s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센터 과정속에서 저는 많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말씀은 맞는데 내안에것들과 충돌이 많이 나서 몸살도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중 저는 인터넷으로 신천지라는 것을 알게된후 엄청난 패닉이 왔습니다.
그 착한사람들이 신천지? 이말씀이 신천지.. 저는 몇일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신천지에 발을 끊었지만 그때 뭔가 패전병갔구 허전했습니다. 일주일뒤 강사가 찾아와 저를 설득하고 저도 듣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말씀이 맞고 이같은 말씀을 들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렇게 계시록 실상까지 배우면서 이만희 까지 인정하게 되면서 저는 완전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저는 혼자서도 전도를 나가며 전도에 열을 붙이기 시작했고, 사명을 하므로서 저는 저의 꿈과 가던길을 다 버리고 올인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신천지에 다니면서 신천지에 다니는 환경은 좋은편은 아니였습니다. 1년에 거의 한번도 교회에 안빠지던놈이 한번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많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식구는 물론 특히 어머니가 많이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취업핑계와 졸업핑계로 설득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강릉에서 살았지만 자취를 하고 있었고 원래 다니던 교회도 매일 얼굴도장을 찍으어야 된다는 피드백이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신천지 교리에 빠진 저는 일반교외에 있는것만으로도 점점 힘들었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달에한번 2주에 한번씩 나중에는 저녁예배에만 교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당시 저는 기도제목이 환경을 열어주세요.. 바벨사람들을 진리의곳으로 온도케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매일같이 하였습니다. 그결과 저는 기도에 응답을 받은거처럼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점점 터치도 안하시고 매주같이 교회대예배에 참석을 안해도 별말씀이 없으셔서 드디어 나도 환경이 열리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구역장을 맡은이후는 너무나도 바쁜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른아침 교육으로 시작해, 취합모임, 전도, 피드백, 심방, 열매관리, 센터 등등 돌아오면 최소12시는 넘었습니다. 늦게오면 룸메들과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힘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바쁘고 10명이 넘는 구역원들 하나하나 챙기다보니 정작 나에게 소홀해지고, 내 모략에대해 신경쓸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부장과 여러사람들도 항상 조심해야된다 모략점검하라는 충고도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어버이날에 편지말고 딱히 해드린 것이 없어서, 주말에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의 마음을 사려고 들어갔습니다. 평소처럼 주일 저녁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쉬었습니다.
그날, 부모님의 강권으로 갑작스레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3~4개월 전부터 제가 신천지 인 것을 알고 계셨던것이였습니다. 처음에는 분노가 마구 솟았습니다. 나중에는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마음에 저는 물과 밥도 먹지 않고 버텼습니다. 몇일동안 꿈에는 신천지 사람들이 나와 저에게 힘내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꾸 자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신변보호 요청서와 동영상까지 찍은상태라 경찰도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사건이 터지기전에 강릉경찰들이 신천지의 요청에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 강릉늦장경찰이라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사건이 터진적이 있어서 그 꼬투리로 경찰을 매우 귀찮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없어진 이후 신천지들은 또 경찰을 쪼아대며 강릉경찰들은 많은수의 경찰들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천지와 경찰들은 저희마을근처, 교회, 친척, 저와 관련된 모든사람들을 뒷조사하며 캐내고 다니며 귀찮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일이 흘러 잠결에 부모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 쓰러져도 링겔놓으면 되 절대 못나가 라는 말을 듣고, 창문틈으로 본 밖에 환경은 이야 이거 버텨도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과 협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엄마한테 나도 들어는 볼테니 대신 엄마도 끝나면 신천지 교육받으라는 약속을 하며 저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는 신천지의 말씀을 조곤조곤 잘 설명을 했었지만 막상 간사님께는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에이 아니겠지.. 조작아니야?..
그런생각이 들었지만 들을수록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라와 제사장이라는 꿈도 부셔지는 순간이였습니다. 내꺼 다버리고 달려가고 있는데 없어지니 처음에는 맨정신으로 있는것으로만 해도 고통스러웠고 내 몸에서 심장이 나간거처럼 많이 허망했습니다.
깨진후 저는 신앙을 하기 싫었습니다. 이제 신앙같은거 하기 싫다.. 내가 왜 이래야되.. 그냥 막살고 싶다라는 것이 컸습니다. 깨지긴했지만 그 자리를 쉽게 채우지 못해 교육도 받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부모님의 끝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저는 교육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초대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대교회에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습니다.
몇 달전 같은지파 양OO형제라고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섭외팀에 잠깐 합류해서 구리교회에 잠복을 하러 왔었습니다.
그당시 교회 주변을 돌면서 조심해야되.. 때마침 주차장쪽에 양복을 입고 험하게 생기신 두분이 마치 주위를 경호하는거처럼 보였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보고 역시 뱀들은 눈도 뱀처럼 생겼네 라면서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강제개종장소.. 등 안좋은것들만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저또한 처음 초대교회가 더럽고 안좋게 인식이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오고나니 그것은 아니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회복교육을 받고 또한 지금까지 이렇게 있을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 진로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시기때 저는 신천지라는 곳에 빠졌지만 제가 신천지에 빠진것도 하나님께서 다 계획하신거였던거 같습니다.
너무 하나님 안다고는 했지만 자세히 몰랐고, 제대로 몰랐기에 신천지에 대한 경험을 시키신거 같습니다. 정말 목사님의 말씀처럼 기막힐 구덩이였고, 빠져 나온 저는 참하나님을 알게되었습니다.
찬양을 들을때도 이제 찬양의 가사하나하나의 뜻이 보이고, 말씀도 신천지같이 짜마추기 짝퉁교리와 비교할수 없을만큼의 진리의 말씀을 들으니 감사할 따름이였습니다.
저는 이번과정을 통해 눅15장말씀이 너무 가슴에 꽂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특히나 부모님의 사랑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또 저는 원래 존경하는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번 계기로 존경하는 분이 생겼습니다. 먼저는 선교사님들입니다. 그리고 어린양 하나하나를 위해 애쓰시는 초대교회에 모든분들 목사님, 전도사님, 간사님, 또 기도로 힘써주신 모든분들 너무나도 존경스럽고 이 자리를 비롯하여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저는 빌립지파 강릉지역에서 1년 반여년정도 신천지에 소속되어 있던 한*환입니다.
저희가족은 제가 고등학교1학년때까지 부모님과 여동생이였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어머니의 신앙심은 투철하셨습니다. 되게 제 성격처럼 조용한 가정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족간에도 많이 대화가 없었던거 같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2학년때 막내동생이 태어나면서 저희가정은 확 바꿨습니다. 기존 저희 가정과 정반대인 아이가 생기므로서 저희가정은 활기차고 웃음이 많아진 가정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집안에 경제력이 많이 안좋았습니다. 저도 대학이후부터는 알바광이라 할정도로 알바를 많이 하였고 그때부터 ‘아... 편한가정에서 살았으면.. 부자인가정에서 살았으면..’이라는 한탄도 했고 돈이 뭐길래.. 그놈의 돈은 저의 아킬레스건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토종 강릉사람으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강릉에서 지냈고 교회또한 한교회를 쭉 다녔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는 천막교회로 시작한 교회로서 현재는 40여명이 되는 작은 교회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어머니께서는 항상 말해주셨습니다. ‘넌 교회에서 1호 아이라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점점 크면서 그사랑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사춘기라는 과정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비교적 사춘기를 조용히 지나간 편이였고, 신앙적 사춘기도 찾아왔습니다.
매주 똑같은 주일 어린이예배부터 저녁예배까지 하루종일 교회에 있어야 한다는게 어느순간부터 시간 아깝고 왜 하루종일 있어야되지?라는 생각이 들며.. 우리교회는 왜 사람이 많이 없을까? 더큰교회에 가고 더많은사람들과 프로그램을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교회 다니면 착해야되고 나쁜짓도하면안되 라는것도 싫었습니다.
사춘기와 신앙적사춘기가 겹치면서 대학가면서 두얼굴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성실하고 좋은교회오빠로.. 교회밖에서는 세상애들 노는거처럼 놀며 즐겼습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하던 3학년 2학기때 신천지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당시 이단에 대해 거의 몰랐습니다. 평소 영어에 관심이 많아 어떤외국인들이 같이 회화도하고 같이 운동도 하자고 했을 때 흔쾌히 승낙을했습니다. 그래서 교회형들에게 자랑을 했더니 ‘야 그건 몰몬교! 이단이자나’라는 꾸지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단에 대해 잘몰랐고, 신천지에 대해도 잘모르고 있었습니다. 대학 3학년때 노방으로 알게된 자매는 거짓말처럼 공감대가 막???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전에도 다른자매에게 저의 정보가 있어서 그정보로 저를 간파해있던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만난후 qt같은 것을 제안했지만 저는 당시 실험실과 공부를 해야할것들이 많아서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난쯤 밥을 먹다가 우연으로 알게된 교사.. 그교사를 통해 저는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모태신앙이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무지함을 드러내더라구요. 저는 싫었지만 그 순간 욕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좀 배워서 지식좀 쌓고 애들에게도 가르치고 나도 좀 배워야겠다 라는 욕심이 들었고, 재밋고, 신기해서 들어보기로 했고,그로 인해 저는 s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센터 과정속에서 저는 많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말씀은 맞는데 내안에것들과 충돌이 많이 나서 몸살도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중 저는 인터넷으로 신천지라는 것을 알게된후 엄청난 패닉이 왔습니다.
그 착한사람들이 신천지? 이말씀이 신천지.. 저는 몇일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신천지에 발을 끊었지만 그때 뭔가 패전병갔구 허전했습니다. 일주일뒤 강사가 찾아와 저를 설득하고 저도 듣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말씀이 맞고 이같은 말씀을 들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렇게 계시록 실상까지 배우면서 이만희 까지 인정하게 되면서 저는 완전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저는 혼자서도 전도를 나가며 전도에 열을 붙이기 시작했고, 사명을 하므로서 저는 저의 꿈과 가던길을 다 버리고 올인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신천지에 다니면서 신천지에 다니는 환경은 좋은편은 아니였습니다. 1년에 거의 한번도 교회에 안빠지던놈이 한번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많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식구는 물론 특히 어머니가 많이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취업핑계와 졸업핑계로 설득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강릉에서 살았지만 자취를 하고 있었고 원래 다니던 교회도 매일 얼굴도장을 찍으어야 된다는 피드백이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신천지 교리에 빠진 저는 일반교외에 있는것만으로도 점점 힘들었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달에한번 2주에 한번씩 나중에는 저녁예배에만 교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당시 저는 기도제목이 환경을 열어주세요.. 바벨사람들을 진리의곳으로 온도케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매일같이 하였습니다. 그결과 저는 기도에 응답을 받은거처럼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점점 터치도 안하시고 매주같이 교회대예배에 참석을 안해도 별말씀이 없으셔서 드디어 나도 환경이 열리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구역장을 맡은이후는 너무나도 바쁜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른아침 교육으로 시작해, 취합모임, 전도, 피드백, 심방, 열매관리, 센터 등등 돌아오면 최소12시는 넘었습니다. 늦게오면 룸메들과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힘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바쁘고 10명이 넘는 구역원들 하나하나 챙기다보니 정작 나에게 소홀해지고, 내 모략에대해 신경쓸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부장과 여러사람들도 항상 조심해야된다 모략점검하라는 충고도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어버이날에 편지말고 딱히 해드린 것이 없어서, 주말에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의 마음을 사려고 들어갔습니다. 평소처럼 주일 저녁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쉬었습니다.
그날, 부모님의 강권으로 갑작스레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3~4개월 전부터 제가 신천지 인 것을 알고 계셨던것이였습니다. 처음에는 분노가 마구 솟았습니다. 나중에는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마음에 저는 물과 밥도 먹지 않고 버텼습니다. 몇일동안 꿈에는 신천지 사람들이 나와 저에게 힘내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꾸 자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신변보호 요청서와 동영상까지 찍은상태라 경찰도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사건이 터지기전에 강릉경찰들이 신천지의 요청에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 강릉늦장경찰이라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사건이 터진적이 있어서 그 꼬투리로 경찰을 매우 귀찮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없어진 이후 신천지들은 또 경찰을 쪼아대며 강릉경찰들은 많은수의 경찰들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천지와 경찰들은 저희마을근처, 교회, 친척, 저와 관련된 모든사람들을 뒷조사하며 캐내고 다니며 귀찮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일이 흘러 잠결에 부모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 쓰러져도 링겔놓으면 되 절대 못나가 라는 말을 듣고, 창문틈으로 본 밖에 환경은 이야 이거 버텨도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과 협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엄마한테 나도 들어는 볼테니 대신 엄마도 끝나면 신천지 교육받으라는 약속을 하며 저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는 신천지의 말씀을 조곤조곤 잘 설명을 했었지만 막상 간사님께는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에이 아니겠지.. 조작아니야?..
그런생각이 들었지만 들을수록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라와 제사장이라는 꿈도 부셔지는 순간이였습니다. 내꺼 다버리고 달려가고 있는데 없어지니 처음에는 맨정신으로 있는것으로만 해도 고통스러웠고 내 몸에서 심장이 나간거처럼 많이 허망했습니다.
깨진후 저는 신앙을 하기 싫었습니다. 이제 신앙같은거 하기 싫다.. 내가 왜 이래야되.. 그냥 막살고 싶다라는 것이 컸습니다. 깨지긴했지만 그 자리를 쉽게 채우지 못해 교육도 받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부모님의 끝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저는 교육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초대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대교회에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습니다.
몇 달전 같은지파 양OO형제라고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섭외팀에 잠깐 합류해서 구리교회에 잠복을 하러 왔었습니다.
그당시 교회 주변을 돌면서 조심해야되.. 때마침 주차장쪽에 양복을 입고 험하게 생기신 두분이 마치 주위를 경호하는거처럼 보였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보고 역시 뱀들은 눈도 뱀처럼 생겼네 라면서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강제개종장소.. 등 안좋은것들만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저또한 처음 초대교회가 더럽고 안좋게 인식이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오고나니 그것은 아니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회복교육을 받고 또한 지금까지 이렇게 있을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 진로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시기때 저는 신천지라는 곳에 빠졌지만 제가 신천지에 빠진것도 하나님께서 다 계획하신거였던거 같습니다.
너무 하나님 안다고는 했지만 자세히 몰랐고, 제대로 몰랐기에 신천지에 대한 경험을 시키신거 같습니다. 정말 목사님의 말씀처럼 기막힐 구덩이였고, 빠져 나온 저는 참하나님을 알게되었습니다.
찬양을 들을때도 이제 찬양의 가사하나하나의 뜻이 보이고, 말씀도 신천지같이 짜마추기 짝퉁교리와 비교할수 없을만큼의 진리의 말씀을 들으니 감사할 따름이였습니다.
저는 이번과정을 통해 눅15장말씀이 너무 가슴에 꽂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특히나 부모님의 사랑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또 저는 원래 존경하는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번 계기로 존경하는 분이 생겼습니다. 먼저는 선교사님들입니다. 그리고 어린양 하나하나를 위해 애쓰시는 초대교회에 모든분들 목사님, 전도사님, 간사님, 또 기도로 힘써주신 모든분들 너무나도 존경스럽고 이 자리를 비롯하여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